구교현
노동당 전 대표
지난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던 시각, 나 또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불법’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는 이유에서다. 2015년 11월3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99%가 좌파 교과서’라며 정부서울청사 안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했을 때, 나와 노동당 당원들은 청사 바깥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록 국정교과서는 막지 못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걸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 경찰은 그날 기자회견 참석자의 절반에 달하는 10여명을 불러 조사했고, 나를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지난 5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감동의 연설을 하던 그 시각, 나는 역시 재판을 받고 있었다. 2015년 11월14일 노동개악과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던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는 이유에서다. 백남기 열사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바로 그날이었다. 재판부는 나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허용하지 않은 행진을 했고, 해산하라는 명령에 불응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동당 당원 수십명이 이 건으로 처벌받았다.
새 정부는 가장 먼저 국정교과서 폐기를 발표했다. 노동개악 폐기도 국정운영방향 보고서에 포함되었다. 박근혜 시대의 적폐가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았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그러나 적폐를 막으려던 우리들의 노력은 불법이 되었다. 범법자의 잘못된 행동을 고발했던 우리가 되레 범법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에 대한 공소장은 매우 간단하다. “11월3일, 20여명이, ‘국정화 반대’ 구호를 외쳤다. 거기 구교현이 있었다. 11월14일, 수백명이 ‘노동개악 저지’ 구호를 외쳤다. 거기 구교현이 있었다”가 사실상 내용의 전부다. 대단한 불법행위라도 있는 양 참가자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하더니 제출된 공소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11월3일의 기자회견은 인적 드문 청사 앞 인도에서 열렸는데 그것이 어떻게 공공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건지, 11월14일의 집회는 시작하기 전부터 경찰이 모든 길을 차단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통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는데 대체 누가 누굴 위협했다는 건지, 어떤 설명도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11월3일, 근처에선 우익단체의 국정교과서 ‘찬성’ 기자회견도 열렸다는 것이다. 똑같이 현수막을 들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지만 그들이 사법처리 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집회의 불법 여부를 판단한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적폐는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박근혜 권력은 국정원 선거개입, 정당 해산, 세월호 참사, 블랙리스트, 노동개악, 국정교과서, 테러방지법을 거치며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 했다. 미신고 집회 책임자는 여지없이 소환했고 벌금에 실형까지 선고했다. 권력에 가장 강력히 저항한 한상균 위원장은 집회 주최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혔다. ‘이런 집회를 열어도 될까?’ ‘이런 행동을 하면 체포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역시 스스로를 검열했다. 박근혜 적폐는 어찌 보면 필연적 결과이다.
새 정부에 묻는다. 대한민국은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인가. 집회를 이유로 구속된 사람들, 박근혜 시대가 낳은 수많은 범법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는가. 국민의 사상, 신념, 행동을 통제하는 악법들을 여전히 살려둘 생각인가. 촛불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새 정부의 판단이 궁금하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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