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은 해외 영화와 드라마 14건중 한류(韓流)작품은 한 건도 없었다. 작년 1분기 37건 가운데 5건(프로듀샤 가시꽃 등 3개 작품)이 한국산 드라마였던 것과 차이를 보였다.
중국에서 심의허가를 받았지만 방영되지 못한 한국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줄거리를 소개한 중국 사이트 /뎬스먀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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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사드배치 결정을 발표한 작년 7월 이후인 작년 3분기와 4분기에는 각각 1건(피노키오)과 7건(함부로 애틋하게, 용팔이, 사임당 빛의 일기, 날아오르다 등 4개 작품)이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중문화원 관계자는 “심의를 신청해서 결론나기까지 일정시간이 소요된다”며 “사드 배치전 신청한 경우 뚜렷한 이유없이 정부가 불허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합작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는 양국에서 동시 방영됐지만 주연 배우들의 중국 팬 미팅이 전격 취소됐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후난TV에서 20부작 허가를 받았지만 방영을 하지 못했다. 정부가 허가를 내줬지만 방송국이 알아서 방송을 하지 않는 모양새를 띤 것이다. 중국 당국이 사드보복을 두고 민심(民心)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앞서 16일엔 중국 연쇄경영협회(체인유통업계 단체)가 매년 발표하는 체인 유통업체 리스트가 나왔다. 주요 외자 체인 유통업체 리스트(20개사)와 일용 소비재 체인 유통 100대 기업명단에 롯데마트가 보이지 않았다. 롯데마트는 협회가 2015년 매출 기준으로 작년 5월에 발표한 주요 외자 유통업체 순위에서 9위, 일용 소비재 체인유통업체 명단에선 16위에 올랐다.
롯데 중국본부 관계자는 “공시자료 기준으로 작성되는데 올해 왜 빠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롯데는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사드보복의 집중타깃이 된지 이달말로 석달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특사 이해찬 전 총리(왼쪽)가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베이징 공동취재단 |
5.9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사드보복 완화 기대감이 커진 와중에 생긴 사례들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축전(5월10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11일), 일대일로 정상포럼 한국 대표단장 접견(14일), 중국특사단 접견(19일)으로 이어지는 행보가 사드보복 완화 기대감을 키웠다.
사드 배치가 가속화되면서 양국 고위급 교류가 중단됐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시 주석의 한중 관계 고도중시 발언과 문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는 언급이 이어진 것도 기대감을 부추겼다.
이 때문일까. 중국의 사드보복 완화 조짐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우리 언론을 통해 잇따라 소개됐고, 이를 중국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사드보복 완화를 요청한데 이어 이해찬 특사도 중국측 인사들에게 이를 주문한 것으로 공개되면서 이같은 기대감이 증폭됐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이 사드보복 완화 수순에 들어간 것일까. 중국에서 만난 우리 정부나 민간 인사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다. 양국이 대화를 하기로 한 건 큰 변화지만 사드배치에 대한 양국의 입장은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사드보복의 뚜렷한 사례로 한한령과 한국 단체관광 금지, 롯데마트 영업정지 등이 꼽힌다. 문 대통령 선출 이후 이 부문에서 변화가 있어야 보복 완화로 해석될 수 있다. QQ뮤직에서 중단했던 K팝 차트가 복원됐지만 문 대통령 선출 전에 이뤄진 것이고, 현대자동차가 광저우에서 이달 13일 가진 연례 판촉전에서 800여대를 판매한 것도 작년의 2000대에 비하면 위축된 사례이고, 단체관광 금지령 해제를 위한 여행사 소집설은 소문에 그쳤다. 중국내 99개 매장을 둔 롯데마트는 여전이 90%가 영업정지 등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베이징 총영사관의 하루 평균 신청 비자건수도 3월 하순 200개까지 떨어졌다가 400개 정도 올라왔지만 평소 800~1000개의 절반도 안된다. 중국 음료 업체 농푸산취앤(農夫山泉)이 빅뱅 인터넷 광고를 재개한 것은 사드 배치 결정전 이미 계약한 상태에서 광고를 안할 수 록 손해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보면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푸산취앤은 오프라인에선 빅뱅광고를 해왔다.
실리를 추구하는 중국 기업들이 한류모델로 광고를 하면 역효과가 날 시점이 지났는지 여부를 챙기는 것은 문 대통령 선출 이후 한중 관계 개선 기대감도 작용했겠지만 반한 정서가 3월에 정점을 찍은 이후 다소 누그러진 현실도 반영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중국에선 상부의 눈치를 보면서 한국과의 민간 교류를 주저하는 입장과 이제 한번 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이익을 쫓는 입장이 혼재된 상황이다. 4월26일 산둥(山東)성 더저우(德州)시가 한중 전기자동차 기술교류회를 주최한 것이나 중국 업체가 뮤지컬 '빨래'(제작 씨에이치 수박) 판권을 사서 중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형식으로 6월 23일~7월 9일 베이징 다윈극장에서 공연하게된 것은 후자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중국 진출 우리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 파트너로부터 수입을 위한 실사를 하겠다고 문의를 해오거나, 한국 연예 기획사에 접촉을 해오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드보복 완화를 염두해둔 기대감을 반영할 뿐이다. 중국 당국의 사드보복 완화조치에 따른 게 아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특사 이해찬 전 총리(왼쪽)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공동취재단 |
특사단 관계자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에게 8월24일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으로 문화든 체육이든 행사를 함께 하자고 했는데 답을 하나도 안했다”고 전했다. 왕이 부장이 답했다면 한중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 될 수 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중국 당국이 완화한 것이든 민간에서 완화 기대감이 커지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 사드배치 협상을 앞두고 있다. 중국 정부는 움직이지도 안했는데 사드보복 완화 기대감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건 우리의 협상력을 떨어뜨린다. 그만큼 우리가 절박하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사드배치 반대에 대한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있다. 왕이 부장은 이달 22일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사드를 한·중 관계의 ‘목에 걸린 가시’로 비유하며 “한국이 빨리 가시를 빼라”고 요구했다. “방울을 단 사람이 방울을 떼어내야 한다”고도 했다. 왕 부장은 18일 베이징에서 이해찬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한·중 관계의 ‘걸림돌’인 사드를 한국이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특사가 시 주석 등과 면담 뒤 베이징특파원들과 만나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지속해서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 것은 이제 대화의 출발선에 서 있을 뿐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해찬 특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 공동취재단 |
앞으로 있을 사드협상을 두고 시 주석은 이 특사에게 “한중 관계 발전의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주문했다. 함의가 어떻든지 대국적(大局的)으로 봐야하는 협상임에는 분명하다. 향후 한중 관계의 틀 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협상이다.
협상 과정에서 사드보복의 부당성을 들어 해제를 요구하는 건 필요하지만 보복을 풀어주면 중국 입장을 들어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한중 관계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시 주석이 과거 한국 대통령이 보낸 중국 특사를 접견할 때와는 달리 이 전 총리를 만날 때 자신은 상석에 앉는 식의 자리 배치를 함으로써 비대칭적인 관계임을 의도적으로 내비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때다.
사드보복 완화 여부에 일희일비하기 보다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해 보인다. 내정(內政)에선 이견을 보여도 외교에선 하나의 민심을 보여주는 게 한중 관계 협상을 앞둔 새 정부에 최고의 지원사격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중국과의 소통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하나의 힘을 만들기 위해 ‘사드 소통’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xiexi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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