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 선생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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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빛과 어떤 빛나는 시간이 담긴 공간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줍니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임형남·노은주 건축가 지음)에 나오는 말이다. 오래된 집에 머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의 말처럼 공간이 찬란했던 순간 덕분 같다. 작품 활동의 산실로서, 혹은 비밀의 정원을 품었던 밀실로서, 빛과 시간이 빚은 서울의 오래된 집들을 찾아 문을 두드려봤다.
한무숙문학관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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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옛집과 글의 향기, 명륜동 한무숙문학관
“삐걱….” 반듯한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오월의 햇살이 드리워진 안뜰을 건너, 전시실로 꾸민 안채로 닿았다. 대청마루에 앉아 신발을 벗는데, 못에서 노닐던 빨간 금붕어들이 뻐끔거리며 쳐다봤다. 잘생긴 기둥과 바닥은 나뭇결 따라 빛이 났다.
혜화동로터리를 지나 골목 안에 자리한 ‘한무숙문학관’은 소설가이자 삽화가, 수필가였던 향정 한무숙(1918~1993) 선생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다. 작가가 평생 살며 집필 활동을 했던 옛집에서 장남인 김호기 관장이 대를 이어 머물고 있다.
한무숙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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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 작가 사후 안채와 집 일부를 개방해 작가의 육필 원고와 생활용품 등을 전시해두었다. 응접실에는 지난 시간 발걸음 했던 유명 문인과 화가들의 작품이, 벽에는 흑백사진과 손때 묻은 가구와 수집품이 빼곡하다. 집필실로 올라가면 집필 도구와 문구류, 책 등이 그대로 놓여 있어 <역사는 흐른다> <만남> 등 작가의 대표작이 탄생한 배경을 돌아볼 수 있다.
60여년 전 부산에서 서울의 이 집으로 피난 왔던 십대의 소년은 집과 함께 나이가 들어 일흔을 훌쩍 넘겼다. 김 관장은 주변이 온통 앵두밭이었다는 혜화동 시절로 집의 역사를 회상했다. 상이군인들이 대문을 두드리던 때였다. “어머니는 늘 모든 사람을 차등 없이 똑같이 대하라고 하셨어요.” 김 관장에게 ‘집’과 ‘어머니’는 같은 단어다.
처음 만난 사람을 집으로 들이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다. 버젓이 드러난 살림살이와 가족들의 성장 액자는 은밀한 사생활이라 엿보기가 조심스럽지만, 김 관장은 허물없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되도록 안내도 직접 한다. 날마다 두꺼운 공책을 펼쳐 ‘집에 대한 기억’을 적는다며 펼쳐 보였는데, 가족 사랑이 지극했다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담히 전해졌다. (종로구 혜화로9길 20/ 방문 전 예약해야 함/ 문의 02-762-3093)
성북동 예술가들의 그윽한 옛집 탐방
성북로15길 9의 작은 한옥도 이야기가 깊다. 평생 ‘한국의 미’에 취해 한국 문화를 탐구했던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집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을 집필했던 방은 여전히 반질반질 윤이 난다.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선생의 집은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선정한 시민문화유산 1호로 등록되어,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관리 중이다.
최순우 옛집에서 마련한 5월의 시민축제 ‘집’은 ‘향기 가득한 옛집’을 주제로 31일까지 다양한 체험행사를 연다. 오는 27일에는 강명희 도예가의 강의와 ‘권진규 아틀리에 답사’가 있고, 28일에는 ‘석은변종하기념미술관 답사’와 ‘최순우 옛집 뒤뜰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한옥의 정취 속에서 클래식과 거문고의 선율이 울려퍼질 예정이다. (문의 02-3675-3401)
석은변종하기념미술관은 서양화가 변종하(1926~2000) 화백이 1980년에 지은 집을 고쳐 일반인에게 개방한 공간이다. 주택가 속에 자리한 작은 양옥 안으로 들어서면 따뜻한 집 냄새 속에서 작가의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성북구 대사관로3길 41/ 방문 전 예약해야 함/ 02-764-2591). 서양화가 윤중식(1913~2012), 한국화가 서세옥(1929~) 화백의 가옥도 근방이다. 걸어서 10분 남짓으로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태준의 수연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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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과 <문장강화> 등을 쓴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도 성북동에서 유명한 옛집이다. 이태준 작가가 1933년에 지어, 이곳에서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 굵직한 작품을 발표했다. 지금은 작가의 외종 손녀가 이곳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차 등 식사류가 두루 평이 좋으니, 잠시 쉬었다 가도 좋겠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도 근처라서 조금만 걸으면 들릴 수 있다. (성북구 성북로26길 8/ 문의 02-764-1736)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성북의 조각가들>전을 열어 성북동 예술가들의 예술세계를 ‘집’과 ‘작업실’을 중심으로 풀고 있다.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최만린 조각가들이 살았던 공간과 작품들을 소개한다. 6월18일까지.
박노수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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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박노수미술관’과 북촌의 ‘백인제 가옥’
옥인동의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80년이나 된 고택으로, 서촌 기행의 거점으로 여겨진다. 남정 박노수(1927~2013) 화백이 40년 동안 살며 작업하던 공간을 2011년 종로구에 기증했는데, 간송미술관을 지었던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빅길륭이 지은 집으로 문화사적인 의미도 높다. 집에 들어서면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따라 2층까지 전시실이 이어진다. 방과 방 사이를 걸으며 작품과 더불어 생활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묘미도 크다. (종로구 옥인1길 34/ 문의 02-2148-4171)
북촌 가회동에는 백인제 가옥이 있다.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인 강인국 저택으로 나왔던 집이다. 1913년에 지어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이 소유했다. 2009년 서울시가 인수해 전시·체험 공간으로 꾸며, 2015년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해 일반인들을 맞았다. ‘윤보선 가옥’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근대한옥으로, 오는 27일부터는 한달에 한번씩 음악회를 열며 시민들을 맞이한다. (종로구 북촌로7길 16/ 문의 02-724-0232)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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