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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초동여담] 文정부와 레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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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한다. 거듭해서 따지고 의심하고 반대한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발 물러선다. '예스!'.

이 사람 참 지독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가장한 '찬성을 위한 반대'. 고집스러운 경영철학이다. 마크 앤드리슨.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인터넷 선각자다. 지금은 앤드리슨호로위츠라는 벤처캐피탈 대표다. 조직혁신을 위해 '레드팀'을 도입했다.

"동료가 새로운 계약이나 프로젝트 건을 가져올 때마다 나는 무조건 비판한다. 속으로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흠씬 두들긴다. 그렇게 뜨겁게 싸우다가 마지막에 (동료가) '빌어먹을, 이건 정말 괜찮은 거라니까' 라고 소리치면 그제야 박수를 쳐주고 퇴장한다."('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물론 레드팀의 전제조건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도, 그 대상도 조직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동질감이자 동료애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야,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실패 가능성을 낮추자는 것이지' 이런 마음이랄까. 마크 앤드리슨이 반대하는 것도 결국은 찬성하기 위해서다. 거듭된 반대에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레드팀은 그 뿌리가 가톨릭교회의 '악마의 대변인'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누군가를 성인으로 추대하고자 할 때 반대편에서 논박하는 역할자다. 권위적이고 엄숙한 조직에서는 논쟁을 피하게 마련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뜻하지 않게 이탈하더라도 막을 길이 없다. 그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누군가 악역을 맡는 것이다. '넛지'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교수(하버드대 로스쿨)도 레드팀의 역할을 강조했다. "편향적 의사결정으로 발생하는 조직문제의 60%를 감소시킬 수 있다"면서.

경영학에는 '권력거리'라는 말이 있다. 경영자와 직원, 인사권자와 피인사권자, 선배와 후배의 감정적 거리를 의미한다. 권력거리가 멀수록 '을'은 '갑'에게 직언을 하지 못한다. 갑의 능력과 열정과 선의는 별개의 문제다. 권력거리는 시한폭탄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6일째. 낮은 권력과 서민 행보, 탕평 인사와 개혁 조치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지율 80~90%는 올바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이자, 앞으로 더 좋은 리더십을 실천하라는 주문이다. 그제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을 찾았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 간절함을 실현하려면, 아무쪼록 레드팀을 늘 곁에 두기를. 혹시 모르는 권력거리를 항상 경계하기를.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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