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한 ‘배려’는 대단한 게 아니었다. 우선 임신 초기(1주~12주차)에는 간접 흡연을 피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 기간에는 임산부가 니코틴에 노출되면 기형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는 유산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임신 1주~6주차에는 육안으로 임신 상태인 지 쉽게 알 수 없어 가족과 지인들의 배려가 필수적이다.
지난 달에 건강한 딸을 출산한 정모(32)씨도 “다행히 출산까지 잘 마무리했지만 임신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다”며 “임신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로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직장 동료를 봤을 때, 왜 이런 기본적인 배려도 없을까 답답했다”고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중요하다. 임신 7주 차인 이모(29)씨는 “배가 불룩하게 나와야만 임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임신 초기라고 밝혀도 ‘아직 배도 안 나왔네’ 등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 때문에 상처 받고 스트레스 받게 된다”고 했다.
임신 초기를 지나 임신 중기(13주~27주차)에 접어들면 배가 꽤 불러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길이나 계단에서 조심해 달라”고 청한다. 27주차쯤에는 배가 불러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렵고 일어서고 앉는 등 기본적인 동작도 서툴러지고, 몸무게도 6~7kg 이상 증가해 다리 근육 피로가 심해져 넘어질 위험이 높아진다. 자칫 행인과 부딪혀 넘어졌을 때 심한 경우 외부 충격으로 유산에 이를 수도 있다. 국민안전처가 20일 장애인·어린이·노약자 등 각종 재난안전 관련 정책에서 특별한 관리를 받는 '안전 취약계층'에 임산부를 포함시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임신 6개월차인 박모(33)씨는 “한 번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데,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내려가면서 어깨를 밀고 지나가 넘어질 뻔 했다”며 “그냥 서 있어도 균형잡기 힘든데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밀고 지나가 정말 아찔했다”고 말했다. 임신 5개월차 정모(28)씨는 “아무리 급해도 길에서 임산부를 비켜 지나가는 건 어렵지 않다”며 “조금만 조심해주면 임산부는 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 교통 자리 양보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3월 딸을 출산한 박모(30)씨는 “임신 4~5개월에도 서 있기 쉽지 않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교통약자배려석이나 임산부배려석에서 양보 받지 못하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임신 7개월차인 구모(29)씨는 “임산부 자리니까 당연히 일어나 달라는 게 아니고, 정말 힘들어서 부탁하는 것”이라며 “작은 배려가 임산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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