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테러 범인은 英서 자란 리비아계 22세 대학생
내무장관 "단독범행 아니다"… 용의자 3명 추가 검거
희생자 중엔 8세 소녀도… 엄마는 딸 사망 모른채 혼수상태
"I ♥ MCR(아이 러브 맨체스터)!"
23일 오후 6시(현지 시각) 영국 맨체스터시(市) 성 앨버트 광장. 전날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30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민들은 "맨체스터를 사랑한다"라는 뜻의 'I ♥ MCR'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 팻말을 들거나 티셔츠를 입고 서로를 격려했다. 한 40대 여성은 "미움 위에 사랑, 이것이 오늘의 메시지"라고 했다.
2005년 '7·7 런던 테러'(52명 사망) 이후 최악의 테러로 충격에 빠진 영국 사회는 슬픔에 빠져 있을 여유도 없이 발 빠르게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테러 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5단계 중 최고인 '임박(critical)' 단계로 격상한다"고 발표했다. '임박' 단계는 당장에라도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06년 경보 단계가 도입된 이후 '임박' 단계가 발령된 것은 2006년과 2007년에 이어 세 번째이다. 메이 총리는 또 추가 테러 방지를 위해 주요 시설과 도심에 군 병력 5000여 명을 배치하는 '담금질하는 사람 작전(operation temperer)'을 지시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2015년 작성된 이 작전이 실제 실시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영국 경찰은 "이번 테러 범인은 리비아 출신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22세 살만 아베디〈사진〉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베디는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 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2011년 카다피 정권 붕괴 후 리비아로 돌아갔다. 이때 자녀 4명 중 아베디와 그의 형 이스마일만 영국에 남았다.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고 영국 명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기도 한 아베디는 최근 급격히 극단주의에 빠져들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년 전부터 이슬람식 복장을 하고 수염도 길렀다. 그는 테러 현장에서 1.6㎞ 떨어진 샐퍼드대학에 2014년 입학했으나 지난해 9월 학교를 그만뒀고, 형과 함께 올 초부터 한 제과·제빵점에서 일해왔다.
일간 더타임스는 "맨체스터는 영국 내 리비아 이민자 공동체가 가장 발달한 곳"이라며 "맨체스터의 자생적 극단주의자들과 리비아 테러세력이 긴밀히 연계됐을 수 있다"고 했다. 아베디는 여러 차례 리비아를 다녀왔고, 3주 전에도 리비아를 방문했다가 테러 직전 귀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 당국은 아베디가 이때 알카에다 등 국제테러단체와 접촉했거나 테러 훈련을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도 "아베디가 테러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범과 배후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 경찰은 전날 아베디의 형을 체포한데 이어 이날 추가로 용의자 3명을 검거했다. 앰버 러드 내무장관은 "이번 테러는 아베디 단독 범행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경찰도 아베디 혼자 강력하고 정교한 폭탄을 제조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공범이나 배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BBC는 "그는 단순 폭탄 운반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희생자 신원도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초등학생인 사피 로즈 루소스(8)와 대학생 조지나 캘랜더(18), 공연장에 간 딸을 데리러 갔다가 참변을 당한 마르친(42)·안젤리카(40) 부부 등 13명이다. 숨진 루소스를 데리고 공연장을 찾았던 루소스의 엄마는 딸이 사망한 사실도 모른 채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유명 가수들의 공연 취소도 잇따랐다. 미국 록밴드 블론디는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한다"며 런던 콘서트를 취소했고, 영국 팝그룹 '테이크 댓'도 리버풀과 맨체스터에서 열 계획이었던 공연을 취소했다.
[맨체스터=장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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