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여기에 두면 한 집 더 이득인데, 왜 알파고는 딴 데 뒀을까요."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烏鎭)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프로 바둑기사 커제 9단의 대국. 전체 289수 중 200수를 넘어선 후반부가 되자 중계 해설을 하던 프로기사들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TV조선 중계를 진행한 김영삼 9단은 "알파고가 세 차례 정도 손해가 분명한 수를 뒀다"고 말했다. 상대를 흔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승패가 이미 알파고 쪽으로 기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 프로기사는 "알파고가 막판에 손해를 보는 바둑을 둔 탓에 중반 3~4집 이상 벌어졌던 바둑이 1집 반 차이로 끝났다"고 말했다. 일부 기사들 사이에서는 "알파고가 최소한으로 이기면서 대국을 재미있게 이끄는 능력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오로지 승률만 따지는 알파고
하지만 알파고에 짜릿한 승부를 만드는 능력은 없다. 프로그램 오류 때문에 엉뚱한 수를 둔 것도 아니다. 알파고 개발 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 구글 딥마인드 수석 과학자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알파고가 승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를 두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는 시뮬레이션(모의실험)으로 승률을 계산한다. 매 수를 둘 때마다 앞으로의 진행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돌려본 뒤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수를 고른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알파고는 상대의 공격 가능성이나 대국 자체의 불확실성을 없애면서 승률을 높이는 게 최선의 수라고 판단한다"면서 "인간의 눈에는 손해로 보이지만 확실하게 이기는 수만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 새 버전은 올 초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서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프로기사들에게 60전 60승을 기록했다. 이때도 자신의 집을 스스로 없애는 등 손해 보는 수를 두곤 했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알파고는 10집 차이로 이기는 80%의 확률보다 반 집 차이로 이기는 90%의 확률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두뇌·학습 방법으로 진화
스스로 길을 찾아내는 알파고는 바둑 이외의 분야에서도 맹활약할 수 있다. 이식 실장은 "사람이 자율 주행차에 도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입력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알파고를 활용하면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신약 개발이나 의료, 금융 상품 개발 등에도 알파고의 기술이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defy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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