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 후견인'으로 변호사가 지정된 덕분… 2013년 도입후 급증
부자들만 이용? 대부분은 평범… 가정법원, 올 7월 전문센터 설립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 갖은 고생을 하며 곰탕집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오래 전 작고한 어머니는 시장통 곰탕집에서 일하며 비법을 전수받았다. 인근 상인, 직장인들 사이에서 소문을 타면서 곰탕집은 수십억 가치의 유명 맛집으로 컸고, 분점(分店)도 여럿 생겼다.
그러던 2012년 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이자 아들이 "동생(딸)이 정신이 없는 아버지를 은행에 데리고 가 현금 5억원을 찾아갔다"고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가족 간 분쟁이 시작됐다. 딸은 딸대로 "오빠가 분점을 자기 명의로 돌린 것으로도 모자라 본점까지 가지려 한다"며 맞섰다.
한 치 물러섬 없이 다투는 남매에게 2014년 법원은 '둘이 똑같이 돈을 내서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재산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중재안을 제안했다. 아들은 받아들였지만 딸은 거부했다. 그러자 법원은 싸우는 남매 대신 치매 걸린 아버지의 법률행위를 대신할 성년후견인으로 변호사를 지정해 남매가 마음대로 아버지의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했다.
4년 전인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고령화 추세와 맞물리면서 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첫해인 2013년 637건의 후견 신청이 전국 법원에 접수됐지만 지난해에는 3209건으로 5배나 뛰었다. 법원에 따르면 성년후견 사건의 64.1%는 부모의 재산 등을 놓고 자녀끼리 싸우다 신청하고, 자녀와 배우자(12.8%), 친척들(11.5%) 간 분쟁도 신청의 원인이다.
작년 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그 친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와중에 신격호(95) 롯데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문제가 부각되면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 사건으로 '성년후견은 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도'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퍼진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실제 법원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서울가정법원의 다른 관계자는 "6·25 이후 밑바닥부터 시작해 어렵사리 건물 한 채 마련한 사람들이 이제 80대로 접어들면서 기억의 끈을 놓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 자식이며 친척들이 재산 다툼을 벌이다 결국 법원을 찾게 된다"고 했다. 법원은 자식들이 치매에 걸린 부모를 잘 부양하기 위해 자신을 후견인으로 신청하면 받아주지만, '곰탕집 소송'처럼 상속 재산 다툼이 얽혀 있다면 변호사·법무사·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한다. 서울가정법원은 오는 7월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성년후견센터도 설립하기로 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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