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학교' 설립한 콜롬비아 안무가 알바로 레스트레포]
내전과 빈곤 시달린 아이들에게 무용·철학 가르쳐 세계 무대로
20년 흘러 졸업생 8000여명… 그중 500명 안무가·무용가 성장
제2의 '엘 시스테마 운동' 불려
콜롬비아 안무가 알바로 레스트레포(60·사진)는 1997년 자신의 고향인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 '몸의 학교'를 세웠다. 아이들에게 무용과 철학, 연극 같은 예술을 가르치며 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인구 100만 중 70%가 빈민으로 살면서 30년 넘게 내전에 시달렸던 카르타헤나 주민들은 환영 대신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춤으로 평화를 이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들 말했다. 레스트레포는 "좋은 교육이 콜롬비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진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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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흐른 지금, '몸의 학교' 졸업생은 8000여 명에 달한다.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며 공연도 한다. 그중 500여 명은 전문 안무가나 무용가가 돼 전 세계를 누빈다. 해외 매체들은 정치 불안에 시달리던 베네수엘라 빈민층 아이들에게 무기 대신 악기를 들려준 '엘 시스테마 운동'의 '몸 버전'이라 부르며 '몸의 학교'를 조명했다.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인 TED 무대에도 섰고, 지난해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댄스 프로그램 전문가 클래스 시리즈'를 진행했다. '몸의 학교'가 성장한 만큼 콜롬비아도 변했다. 최근 대통령과 반군 단체가 평화협정을 맺으며 불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다.
27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레스트레포를 서울 인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 폭력과 차별이 난무한 교실에서 교육받았던 끔찍한 경험이 있기에 자라날 아이들에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며 "재능을 알릴 기회를 주고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스무 살이 돼서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스물네 살 때인 1981년 콜롬비아 정부 장학생으로 미국 뉴욕으로 유학했다. 유명 안무가인 제니퍼 뮐러, 마사 그레이엄 밑에서 공연하며 명성을 얻었다. 자신의 안무단을 만들었고 '라틴 아메리카 현대 무용의 선구자'라는 칭송도 들었다. 한창 이름을 날리던 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뉴욕에서 만난 한국인 안무가 조규현 덕분이다.
콜롬비아 안무가 알바로 레스트레포가 세운‘몸의 학교’출신 학생들이 공연하는 모습. 전 세계를 다니며 전쟁과 인종차별, 인권유린을 반대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자주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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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스승인 조규현 안무가는 제게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많은 영감을 준 것처럼 당신의 재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라'고 설득했죠. 그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비움' '무소유'를 강조했는데 정신적 풍요로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됐죠. 그것이 '몸의 학교'의 주요 철학입니다." 조규현에게 배운 한국 전통무용인 '춘앵무'도 '몸의 학교' 수업 과정 중 하나가 됐다.
학교는 수업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콜롬비아 정부와 기업, 개인 지원으로 운영한다. 처음 온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내고, 겅중겅중 뛰기만 한다. "춤은 사람과의 접촉이자 서로를 존경하면서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타인과 눈도 안 맞추고 손 닿는 것도 경멸하던 아이가 2주 만에 사람들과 어울려 가며 환하게 웃는 모습도 여러 차례 보았다. "예술이 이뤄낸 기적이죠. 트라우마와 슬픔, 고통 같은 걸 내뱉으면서 화해하고 치유해 가는. 우리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가 불행한 작은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통찰하는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몸이 말해주는 기적의 힘을 더욱 많은 사람과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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