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추종 아닌 후원자로 진화하는 팬 문화
정치에도 상륙 … 맹목적 팬덤은 넘어야
양성희 문화부장 |
실제 대중문화 연구에서도 팬덤은 중요한 주제다. 문화 수용·소비 측면뿐 아니라 문화산업·시장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가령 최근 걸그룹 시스타의 해체에 대해 K팝 전문가인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K팝을 산업 관점에서 볼 때 ‘코어 팬덤’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음원강자’라 불릴 정도로 히트곡 릴레이를 해 온 시스타였지만, 단순히 음원을 듣는 것 이상으로 콘서트를 가거나 구즈(스타상품)를 사며 주머니를 무한대로 열어 주는 열혈 팬덤이 부재한 것이 한계였다는 지적이다. 실제 음악시장에서는 콘서트나 구즈 수익이 음원·음반 수익 규모를 훌쩍 넘어선다. 최근 국내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 뮤지컬 시장 뒤에도 이 같은 열혈팬덤, 혹은 ‘덕후’들이 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최근 팬 문화는 단순히 스타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타의 성장을 후원하는 양육자·후원자 모델이 대세다. 아예 팬들이 스타를 만들 수도 있다. 국민프로듀서(시청자)들이 오디션에 참여한 101명의 멤버 중 11명을 골라 아이돌그룹으로 데뷔시키는 Mnet ‘프로듀스 101’이 대표적이다. 매회 경연을 열고 시청자 투표로 순위를 매겨 탈락·생존자를 가린 뒤 최종 데뷔 멤버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걸그룹 IOI를 탄생시킨 시즌1에 이어 최근에는 남자 편인 시즌2가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시청자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멤버의 순위 상승과 생존을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돌 데뷔 과정을 보여 주는 각종 TV 리얼리티쇼도 비슷하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마치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같은 심경으로 스타의 성공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양육자·후원자 모델의 다음 단계는 아마도 팬클럽이 하나의 정치사회 주체로 진화하는 것이다. 팬클럽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선행, 사회참여 공익 활동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사회적 이미지를 위해 팬들이 ‘좋은 일’을 시작했다가 아예 팬클럽 자체가 사회활동의 주체로 진화하기도 한다.
이런 팬 문화가 요즘은 정치 영역에까지 등장했다. 과거에도 ‘노사모’ ‘박사모’ 등 정치인 팬클럽은 이미 존재했지만, 이번 대선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나타난 아이돌급 팬 문화는 이례적이다. 마치 유명 스타 보듯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대통령을 ‘이니’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유세장은 공연장을 방불케 했고, 대통령이 즐겨 입는 푸른색에는 ‘이니 블루’라는 명칭도 붙었다. 소통을 중시하는 대통령의 열린 행보에, 아이돌식 팬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정치를 소비하는 방식이 맞물린 결과다.
정치에 파고든 팬 문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현대인에게 팬이란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이며, 누군가의 팬이라는 것만큼 자신을 분명하게 말해 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 맹목성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이에 대한 조금의 비판이나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비틀린 팬심 말이다. 오랜 경험상 팬덤이 싫어서 그 스타가 싫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마침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에 띈다. “‘사람’에 대한 열광으로 세상에 대한 관심을 대체하지 말 것.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섣불리 사람에게 충성하지 말 것.” 정치인에게 지지자 아닌 팬이라는 태도를 취할 때 되새겨볼 얘기다.
양성희 문화부장
양성희 기자 yang.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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