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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데스크 view &] 정책이 정치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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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명된 노무현 정부 ‘비전 2030’

정치적 사망했지만 정책으로 부활

비정규직 없앤다고 고용 해결 못 해

노동개혁 ‘킹핀’ 제대로 찾아 대처를

중앙일보

서경호 경제기획부장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나온 ‘비전 2030’ 보고서가 재조명되고 있다. 진보정권이 만든 140여 쪽의 비전 2030은 비운의 보고서다. 2006년 발표 당시엔 ‘공허한 청사진’ ‘허황된 탁상공론’ ‘세금폭탄’ ‘현 정부는 생색내고 다음 정부엔 고통을 주는 비전’ 따위의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 10년간의 보수정권에서 비전 2030은 좋은 참고자료가 됐다. 성장과 복지를 함께 아우르는 보고서의 기본철학인 ‘동반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 등으로 이어졌다. ‘무상보육’ ‘근로장려세제(EITC)’ ‘노인수발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 ‘연금 개혁’ 등 보고서의 주요 내용도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알뜰하게 활용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국장으로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던 사람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다. 그러니 비전 2030이 다시 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앙일보가 발간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번 주(1385호) 커버스토리로 이런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고, 본지(5월22일자 B2면)에도 요약해 게재했다.

정치적으로 사망한 비전 2030은 어떻게 정책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을까. 보고서 내용이 좋아서? 그런 면도 있을 게다. 보고서엔 사회적 자본의 개념이 들어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사회 전체의 거래비용을 낮춘다는 점에 처음으로 주목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어깨에서 힘 빼고 솔직하게 썼다. 지지율 바닥인 정부, 잔여 임기는 고작 1년….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외려 그래서 정권 차원의 유불리를 떠나 증세나 자유무역협정(FTA), 노동유연화 같은 ‘쓴 약’을 솔직하게 언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보수에서 진보로, 그리고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쳐 다시 진보로 정권이 바뀌었다.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관료가 상상할 수 있는 정책 범위도 대폭 넓어졌다. 진보정권이 한미 FTA를, 보수정권이 무상보육을 실천에 옮기는 결단도 있었다. 진보·보수 정권이 자신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진보정권이 무상보육을, 보수정권이 한미 FTA를 했다면 얼마나 더 시끄러웠을까.

문재인 정부도 지지층만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정부임을 선언했다. 반가운 얘기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도 국민 모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선거 때 약속했다고 조직된 노조의 입장만 살필 게 아니다. 조직돼 있지 않은 나머지 국민의 이익도 챙겨야 한다. 청년은 지금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고, 청소년은 미래의 일자리가 걸려있다.

공공기관부터 시작, 사회 전체로 성과연봉제를 확산해 경직된 임금체계를 바꿔야 청년의 새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게 정공법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공감하면서도 정책 추진동력이 강했던 정권 초반을 허송하고 정권 후반기에 뒤늦게 총력전을 펼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해소가 화두다. 대기업 정규직과 공기업 일자리를 얻기 위해 청년들은 몇 년을 투자한다. 사회적인 보상체계가 잘못돼 생기는 낭비다. 김동연 후보자는 ‘킹핀제거론’을 거론했다. 킹핀은 볼링핀 중 1, 3번 핀의 뒤에 숨어있는 5번 핀이다. 맨 앞의 1번 핀이 아니라 숨어 있는 5번 핀을 쳐야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뜨리는 스트라이크가 된다. 그는 ‘사회보상 체계와 거버넌스의 개선’을 킹핀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없애는 게 킹핀이 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게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정규직보다 좋은 비정규직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회사와 직원이 상호합의하에 복무기간과 목표를 설정하는 복무협약이 대세라고 한다. 혁신기업의 인사관리를 다룬 신간 『얼라이언스』를 읽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리콘밸리에선 회사와의 동맹 상대로 대우받는 우수 인재들이 한국에선 어떤 대접을 받을까. 유연하고 창의적이며 혁신 아이디어로 뭉친 이들이 정규직보다 더 임금을 많이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

비전 2030처럼 나중에라도 평가받는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 성과연봉제를 되돌리거나 혹시라도 전교조 재합법화를 선언하는 것은 정책을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정책이 그렇게 ‘정치’가 될 때, 비전 2030도 킹핀도 다 사라진다.

서경호 경제기획부장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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