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예술가 정착한 문화 마을
야생 원숭이 불쑥 만나는 힐링 여행지
최근에 ‘힐링’이 여행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죠. 우리 부부의 이번 여행지는 그런 힐링 여행지의 대표주자 격인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Ubu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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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집성촌인 발리 우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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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은 발리의 문화적 중심지에요. 19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 예술인들이 우붓에 정착해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 기존 발리의 힌두 문화와 어우러져 독특한 우붓 만의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처럼 요가와 명상을 하는 장기 여행자들의 성지가 되었어요. 우리 부부도 잠시나마 그런 힐링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기대를 가득 안고 우붓에 도착했죠. 그런데 웬걸! 복잡한 교통체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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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저리가라 할 우붓의 교통 체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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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단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바로 교통이에요. 유명 관광지임에도 여전히 대중교통이 없어서 택시 아니면 여행사 버스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조금 먼 곳에 가려 해도 택시기사와의 흥정을 하다 보면 가기도 전에 녹초가 되곤 한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붓의 도로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뒤엉켜 주차장처럼 꽉 막혀 있는 일이 다반사라 오히려 걷는 게 더 빠를 정도예요. 우붓은 발리 국제공항에서 거리상으로는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택시를 타고 약 2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실망도 잠시! 우붓에 도착하면 바로 골목으로 들어가 보세요. 큰길을 벗어나 골목으로만 들어서면, 이제부터가 힐링의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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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려면 대로변보다 골목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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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골목에는 사이사이에 와룽(작은 식당)과 숙소가 많아요. 저희는 와룽에서 식사도 할 겸 잠시 짐을 푼 뒤 숙소를 구하러 돌아다녔어요. 관광 도시라 그런지 숙소 가격은 대체적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대부분 아름다운 개인 사원과 정원, 그리고 방마다 뛰어난 경관이 보이는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절로 될 것만 같아요. 우붓 왕궁 근처의 2층 방을 잡았는데, 저 멀리에 발리에서 가장 성스러운 산인 아궁산도 보여요. 그리고 문도 어찌나 화려한지, 마치 왕궁을 하루 빌린 것 같아요. 사실 내부는 평범한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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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내려다 본 우붓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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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우붓 시내 구경에 나섰어요. 힐링의 도시답게 번잡한 길가에서도 오롯이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도 보이고, 그림과 공예품들도 늘어져 있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았어요. 평범한 카페의 뒷마당에도 화려한 사원이 있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우붓. 거리에서는 무슨 행사가 있는지 많은 주민들이 나와 종교 의식을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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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마주친 퍼레이드 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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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갑자기 도로에 원숭이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전봇대 위에도 있고 지붕위에도 뛰어 다니고, 원숭이를 조심하라는 표지판까지 나타났어요. 알고 보니 우붓의 유명 관광명소인 몽키 포레스트(Monkey forest) 앞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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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를 조심하라는 안내판 아래의 원숭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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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친숙한 야생 원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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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원숭이는 신성한 동물이에요. 그래서 우붓의 원숭이들은 동물원처럼 우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숲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어요. 몽키 포레스트에는 약 600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저희를 반겨주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원숭이가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가까이서 원숭이를 본 적이 없을 뿐더러, 심지어 원숭이가 몸에도 올라오니까요. 다행히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람과 같이 자라서 순한 편인데, 그래도 지켜야 할 규칙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눈을 마주 치면 싸우자는 의미이니 눈은 절대 마주치지 말 것. 그리고 어미 원숭이가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으니 새끼 원숭이는 터치하지 말 것. 이 몇 가지만 조심하면 원숭이와 교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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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교감하기.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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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포레스트에는 원숭이 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에요. 숲속에는 오래전 지어진 사원과 이끼들이 조각들이 늘어져 있고, 숲 사이로는 강도 흐르고 있어요. 숲길을 걷다보면 마치 영화 '쥬라기공원'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유명한 곳이다 보니 항상 사람들로 붐비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여행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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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포레스트의 열대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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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힐링 장소는 우붓의 논두렁이에요. 우붓은 오래전부터 땅이 비옥해서 벼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시내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연초록빛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 우붓의 지형 특성상 평야보다는 언덕이 많아서 대부분 계단식 논이에요. 한국인인 우리의 눈에는 시골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쌀이 주식이 아닌 서양인들에게는 매우 이국적인 풍경인가 봐요. 논두렁을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논두렁 사이사이로 요가 교실도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요가도 배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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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계단식 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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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은 곳은 ‘캄푸한 능선길(Campuhan Ridge Walk)’에요. 우붓의 대표적인 산책로인데 해질녘이면 걸으며 석양을 보기 좋은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언덕을 따라 올라와요. 이 능선길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농부들이 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기도 해요. 가시던 농부아저씨께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어요. 관광지임에도 발리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정겨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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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푸한 능선길에서의 트래킹은 하루 마무리용으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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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함과 한가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마을 우붓. 우붓에서 지낸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어요. 이렇게 오래 머물 계획은 아니었는데, 우붓이 주는 기운이 우리 발목을 붙잡았어요. 근심 걱정 내려놓고, 틀에 박혀진 여행이 아닌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이게 진정한 힐링인 것 같아요.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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