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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확실히 드러난 적폐는 ‘단칼’에…저항 큰 것은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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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개혁 방향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방법을 놓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현실적 필요성이 큰 것부터 시작하되 ‘약한 고리’를 외과 수술하듯 도려내는 방법으로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 4대 개혁입법이 야당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밀려 좌초된 경험을 철저히 복기한 결과라는 것이다.

■ 국민적 공감대와 현실적 필요성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국민적 공감대’와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해 우선순위가 매겨지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내놓은 정책 중 ‘적폐청산’에 해당하는 것은 4대강 사업과 검찰개혁에 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하절기에 접어들면서 4대강 녹조 문제가 심각해지는 즈음에 4대강 보 상시 개방,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로 나뉜 물관리의 환경부 일원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 등을 지시했다. 4대강 녹조는 식수원 오염과 직결돼 있다. 여름철에 특히 부각되는 민생 문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해결책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을 택해 대대적인 수술에 돌입한 것이다.

검찰개혁도 국민적 공감대가 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 최우선 개혁과제로 꼽히는 게 검찰개혁이다. 국정농단 사건, 검찰 고위 간부의 각종 독직 사건 등을 통해 정치 검찰, 비리 검찰의 민낯이 생생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 ‘약한 고리’ 외과 수술

현 정부는 구체적으로 문제점이 드러난 사안을 개혁의 고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혁의 명분을 확보하고 ‘전선’을 최소화해 저항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18기)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20기) 등의 ‘돈봉투 만찬 사건’을 진상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이 단적인 예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두 사람의 사의 표명→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23기)과 박균택 검찰국장(21기) 임명→이창재 법무차관(19기)과 김주현 대검차장(18기) 사표 수리→이금로 법무차관(20기)과 봉욱 대검차장(19기) 임명 등 연쇄 효과를 낳았다.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전임 지검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인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검사장급 인사가 예고된 셈이고, ‘우병우 라인’ 등에 대한 대대적인 청산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이렇다 할 반발을 못하고 있다. ‘돈봉투 만찬’은 검찰 내부에서 보기에도 부적절한 것이어서 문 대통령 지시에 반발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차원이 아닌 공직기강 확립 차원”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이 “인위적인 인적청산”이라며 반발할 명분을 주지 않은 것이다. 검찰 인적청산은 ‘공직기강 확립’의 부수적 결과일 뿐이며, 그 원인 제공자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검찰 자신이라는 논리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술도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

하절기 녹조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단기적 조치(4대강 보 상시 개방), 근본적 조치(환경부로 물관리 일원화), 재발방지 조치(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를 패키지로 내놓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는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녹조 문제와 식수원 오염 해결이라는 ‘명분 있는 고리’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사정이라는 부수적 결과를 낳는 셈이다.

■ 여건 무르익지 않은 개혁은 보류

문 대통령의 집권 후 개혁 로드맵을 마련한 국민의나라위원회는 주택정책을 주거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에서 주택정책을 떼어내고 주택청을 신설해 주택정책을 전담토록 하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안은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보류됐고, 대선 전날 문 대통령에게 제출한 300여쪽 분량의 보고서에도 담지 않았다. 여건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면 관철하기도 힘들고 논란만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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