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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한국 축제로 낭트 달구는 두 여인의 ‘위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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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불문화상 받는 보데즈 회장과 이정주 예술감독

동아일보

19일 프랑스 낭트에서 개막한 ‘2017 낭트 한국의 봄’ 축제에서 이정주 예술감독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는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인 미라 보데즈 ‘낭트 한국의 봄 협회’ 회장이다. 두 사람은 4년 전부터 낭트에서 한국 문화예술 축제를 열고 있다. 낭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6일 프랑스 파리 외교관클럽에서 열린 한불 문화상 시상대에 키 작은 한국인 여성이 한 명이 이 나라 대표 국립극장인 샤요 극장장과 나란히 섰다. 낭트 한국의 봄 협회 미라 보데즈 회장(44). 연단 밑에선 이정주 예술감독(48)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4년 전 이 두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서 394km 떨어진 항구 도시 낭트에서 프랑스 지방 최초로 한국 문화 예술 축제를 열 때만 해도 가족들조차 무모하다고 말렸다. 지금은 매년 관객 3000명이 찾아오는 프랑스 서부 지역의 주요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일 ‘2017 낭트 한국의 봄’ 축제 개막식에 참석한 모철민 주프랑스 한국대사는 “오롯이 두 여성의 열정이 만들어 낸 축제”라며 극찬했다. ‘한국을 알리고 싶은’ 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최연소 이수자(이 감독)와 ‘한국을 알고 싶은’ 입양아 출신의 한방 간호사(보데즈 회장)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3년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러 서울에 머물던 보데즈 회장이 우연히 이 감독이 연 파티에 들르면서 시작됐다. 이 감독은 2002년 파리에서 국악 최초로 버스킹(길거리 공연)을 마친 뒤였다.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이 감독은 보데즈 회장에게 공연 번역을 부탁했다가 그의 한국과 음악에 대한 열정에 반했다. 공연 기획 방면에 인맥이 있던 보데즈 회장과 의기투합해 2004년부터 프랑스 투어를 시작했다.

2009년 두 사람은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자”는 목표 하나로 낭트에 들어왔다. 낭트의 항구가 쇠퇴하면서 문화 도시로 변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택한 결정이었다. 오자마자 두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공연, 음식을 곁들인 ‘한국의 밤 저녁행사’를 열었다. 이 감독은 “당시 주민들은 ‘코레(한국)’라고 하면 북한으로 생각할 정도로 한국을 몰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루아르 강가 집에 큰 태극기부터 내걸었다. 배를 타고 다니는 현지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감독은 “2009년 집에서 DVD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본 프랑스인 50여 명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영화 속 우리 옷의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 그리고 ‘금기’를 깨는 스토리에 관객들은 오전 2시가 넘도록 집에 갈 줄을 몰랐다. 영화와 공연, 거기다 한국 음식까지 더해진 이 저녁 행사는 낭트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낭트의 명물로 떠올랐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10년 낭트 한국 명예영사이자 시의원이었던 다니엘 라르질리에르마레샬이 먼저 한국 문화 축제 개최를 제안했다. 낭트의 대표 음악 축제인 바르바르 페스티벌에서 이 감독의 거문고 공연에 반한 인연이었다. 낭트 시와 한국문화원도 지원을 약속했다.

보데즈 회장은 1973년 태어난 뒤 이듬해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가정에 입양됐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둔 부부(남편은 엔지니어, 부인은 고교 영어 교사)의 막내였다. 그가 한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다섯 차례나 한국에 데려간 부모의 정성 덕분이었다. 19일 개막식에도 부부는 개량 한복을 입고 딸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간호대학을 졸업한 보데즈 회장은 한국에서 배운 한의학을 낭트대에서 다시 공부하면서 추나요법, 침, 마사지 등 의료 일도 하고 있다. 이 감독에게 배운 거문고 실력도 수준급이다. 보데즈 회장에게 한국이 좋은 이유를 물어봤다. 한참 동안 허공만 바라보던 그는 “투(tout·‘모든 것’이라는 뜻)”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는 “역사, 음식, 음악, 의학… 다 좋다. 한국 문화는 주변국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깊이가 다르다. 낭트 시민들이 이를 알아가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두 사람의 꿈은 두 가지다. 2023년 낭트 한국의 봄 축제 10주년을 낭트의 가장 유명한 성에서 여는 것. 2010년 일본 사무라이 전시회가 이 성에서 열리는 것을 본 뒤부터 변치 않는 꿈이다. 낭트에 한옥 공연장을 짓는 꿈도 꾸고 있다.

2009년부터 쭉 함께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이제는 친자매”라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상대방 언어를 전혀 못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두 나라 언어 능통자가 됐다. 꿈을 가진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낭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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