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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리셋 코리아]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충분한 공론화 뒤 로드맵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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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의 제안

사교육·선행학습 해소 취지에 공감

특목고 먼저 학생 뽑는 것도 바꿔야

학부모 위해 고입도 ‘3년 예고제’를

일반고 살리려면 자율권 많이 줘야

새 정부에 바란다
서울 도곡동에 사는 김모(46·회사원)씨는 중2 아들 고교 진학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아들은 중학교 입학 전부터 외국어고나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왔다. 그런데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보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어느 학교를 대상으로 언제,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몰라 답답하다”며 “교육청·학교·학원에 물어봤지만 모두 ‘깜깜이’였다”며 불안해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때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집 등을 통해 “복잡한 고교 체제를 단순화하고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 신입생을 동시 선발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방향만 제시됐을 뿐 전환 시기나 방식·대상 등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외고와 자사고를 지망하는 학생·학부모와 해당 학교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교육분과 위원들은 외고·자사고를 포함한 고입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외고·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먼저 뽑아가는 불공정 경쟁과 이들 학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 과열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렇지만 학교 다양화에 대한 수요도 여전해 접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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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의 외고·국제고 38곳과 자사고 46곳의 재학생은 6만8545명(지난해 4월 기준)이다. 일반고 1545곳의 재학생 125만 명의 5.5% 정도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서울대 입학생의 37%가 외고·국제고·자사고 출신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마련하자는 도입 취지와 달리 외고·자사고가 명문대 진학의 통로가 됐다”고 지적했다.

교육 정책은 한 번 바꾸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충분한 공론화와 사전 예고가 필수인 이유다. 위원들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공론화 과정에는 교육부·교육청·교사·학부모·전문가뿐 아니라 외고·자사고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가 출범할 경우 거기에 논의를 맡기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내년 초까진 구체적 시행시기·방법 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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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로드맵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제시돼야 한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상당수 외고·자사고가 2019, 2020년 학교 운영 실태를 평가받아 형태 유지를 결정하는 재지정(5년 단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 입장에선 재지정 심사 1~2년 전에 정책 방향을 알 수 있어야 대비할 수 있다. 고입에도 대입처럼 ‘3년 예고제’를 적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중1 단계에서 고입 전형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고·자사고의 존폐 여부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과학고까지 일반고로 전환하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자율권을 보장하자”(주석훈 교장)는 주장과 “다양한 유형의 학교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김태환 미래교육연구원장)는 의견이 맞섰다.

반면 특목고와 자사고가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을 뽑아가는 방식을 개선하자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특목고·자사고와 일반고 전형을 함께 진행하자는 것이다. 현재 고입 전형은 과학고·외고·국제고·자사고·특성화고(모두 전기고) 선발이 끝나야 일반고·자율형공립고(후기고)가 원서 접수를 시작한다. 안상진 소장은 “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은 일단 특목고·자사고 입시를 준비하고 탈락하면 일반고에 가는 경향이 생겼다”고 밝혔다.

학교 유형은 ‘강제 전환’보다 학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에 재정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자”고 했다. 등록금 수입 감소나 그간의 투자비 때문에 일반고 전환을 망설이지 않도록 ‘당근’도 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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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잠자는 교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원들은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다양한 수업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경계했다. 정제영 교수는 대통령 공약인 고교학점제가 일반고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해 듣는 제도로 미국·영국 등에서 시행 중이다. 학생에 따른 맞춤형·수준별 수업이 가능하지만 수업 종류와 교사 수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 정 교수는 “인접 학교 간 공동 수업과 온라인 수업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교 전환은 강제 말고 스스로 결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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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를 살리려면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태완 원장은 “일반고도 ‘학습 혁명’이 가능하도록 프로젝트 수업, ‘플립 러닝’(거꾸로 수업)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도 “학생 교육도 지식 암기보다는 미래 사회에서 필요한 역량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고 혁신을 위해선 교사의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김경근 교수는 “일원화된 교사의 승진 트랙을 개선해 잘 가르치는 교사가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제안했다. 이화성 교장은 “공교육 투자를 늘려 30명이 넘는 일반고의 학급당 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25명대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영유 논설위원, 천인성 기자, 이영민 인턴기자 yangyy@joongang.co.kr

양영유.천인성 기자 yang.young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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