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편집국에서]예수보다 AI가 먼저 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뿔싸!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 재림하지 않았는데, 헬조선에 인공지능(AI)이 먼저 오고 있다. 2000년 전 세례 요한이 예수의 길을 준비했다. 요한은 말했다.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어렵다.” AI의 선지자는? 로봇이다. 로봇은 말이 없지만 메시지는 짐작할 수 있다. “무인시대가 온다. 완전고용 꿈꾸지 마라!” 아무리 힘이 센 로봇도 스스로 학습하는 AI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경향신문

전조는 나타났다. 온라인 기업 아마존은 올해 초 미국 시애틀에 무인 식료품 매장을 개장했다. 돈 내기 위해 줄 설 필요도 없고, 수금원도 없다. 물건을 들고나오면 자동으로 계산된다. 구글 자동차는 운전할 필요가 없다. 가까운 미래에 전화 한 통이면 기사 없는 택시가 올 것이다. 취객이 무인택시에 시비를 걸 수도 없다. 택시 안에서 기물이라도 파손하면? 영상 파일을 먼저 전송하고, 택시를 가까운 경찰서로 보내면 시시비비는 끝! 얼마 전 백두산에서 채취한다는 생수 CF는 노동자 한 명 보이지 않는 무인 시스템을 자랑했다. 사물인터넷은 현실화됐다. 휴대전화로 보일러, 에어컨을 켠다.

4차 혁명이라는 AI 시대가 오면 헬조선이 끝나고 파라다이스가 도래할까? 여기서 떠오른 궁금증.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벌어 먹고살지?”

뉴딜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벌이면? 대규모 토건 사업은 해결책이 아니란 것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확실히 증명해줬다. 4대강 공사비는 무려 22조2000억원. 월급 185만원짜리 100만명분의 연봉을 쏟아부었다. 경제가 팍팍 살아났던가?

뉴딜의 핵심은 토건이 아니었다. 대형 토건 사업은 루스벨트가 아니라 후버댐을 만들었던 후버 대통령이 먼저 벌였다. 안병진은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정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한 당시는 다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반격과 재조정의 시기였다. 다시 말해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루스벨트 시기의 핵심은 국가 차원의 토건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루스벨트는 국내외적으로 고도 자본을 규제하고 사회적 균형을 회복하며, 잉여가치의 노동자 이전을 통해 레닌이 이끌었던 소비에트와의 비전 투쟁에서 결국 승리한다.’

루스벨트는 소득세를 입이 쩍 벌어지게 올렸다. 최고세율은 1920년대 후반 25%에서 1933년 63%, 1937년 79%, 1942년 88%로 올랐고, 1944년엔 부가세를 더해 94%까지 치솟았다.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방만한 은행을 규제하는 글래스 스티걸법도 이때 시행됐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에서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의 영향력을 줄이고, 무게추를 노동자로 옮겼기 때문이다.

민간에 일자리 창출을 맡긴다는 생각은? ‘어이없음, 헐!’이다. 한국에서 생산성은 ‘사람 줄임’이었다. 그래도 AI 시대에 새로운 일자리가 나오지 않을까? 물론 나온다. 다만 앞에서 생기는 일자리보다 뒤에서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게 분명하다. 일본 언론들은 2030년까지 500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7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올 초 보도했다. 총합은 마이너스 240만개! IT 강국 한국은 특별하고 다를까?

그럼,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하나? 아니다. OECD 국가들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공공일자리라도 늘려왔다. 노동시간도 줄여 일자리 나누기도 하고 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본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법은 성장이 아니다. 첨단산업과 GDP도 아니다. AI 시대엔 정치·경제·사회·환경의 중심에 테크놀로지, 경제지표, 자본이 아니라 사람을 놓아야 한다. 경제지표는 지금도 좋다. 코스피 지수는 6년 만에 2200을 돌파했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자꾸 힘들어진다고 할까. 그건 중산층이 붕괴되고, 돈은 안 돌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 통장에만 어마어마한 사내유보금이 쌓여있다.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고, 그나마 좋은 일자리는 드물다. 노동자에게, 구직자에게, 자영업자에게, 학생들에게 한국은 이미 ‘헬조선’이다. 사측의 직장폐쇄와 해고통보에 맞선 동양시멘트·아사히글라스 등의 노동자들은 광화문의 광고탑에 올라가 단식투쟁 중이다. 얼마 전 숨진 <혼술남녀> 조연출은 55일 동안 휴일은 이틀,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름 첨단이라는 구로디지털단지의 게임개발업체들은 밤샘 노동을 시키며 노동자의 삶을 갉아먹으며 성장해왔다.

1992년 부시를 누른 빌 클린턴의 대선 구호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였다. 이것을 패러다임의 전환기인 2017년 한국버전으로 바꾸면 “사람이 중요해, 이것들아!” 또는 “함께 살자, 제발!”쯤 되지 않을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