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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가사·돌봄·공동체 노동은 왜 경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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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캐서린 깁슨 워크숍 참관기

인간·지구 위한 경제 ‘탈환’

지불노동 외 노동 가시화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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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란 주제로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포럼 장면. 조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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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짙어가던 지난 15일, 서울시립대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을 찾았다. 페미니스트 경제지리학자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날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가 연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 포럼에 참석해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기: 실천과 기술’이라는 발제를 했다. 깁슨 교수는 <그 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The End Of Capitalism, 1996),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Take Back The Economy, 2013) 등으로 공동체 경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해온 호주 학자다.

자신의 저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깁슨 교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의 생존이 타인이나 타자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자. 경제는 복종해야 하는 기계가 아닌 윤리적 실천의 공간이 될 것이다.” 통화량과 노동시장의 조절을 통해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 곧 ‘성장’이 유일한 생존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기계적 경제’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경제’의 용어로 탈환하자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경제’의 표준 모델은 ‘자본주의’ 자체였다. ‘경제=자본주의’인 것처럼 여겨온 것이다. 이날 두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는 “오늘날 경제에 자본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가장 적대적이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공”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사회적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에 근거,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 체제라고 일컬어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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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안경제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한 캐서린 깁슨 교수.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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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위…>에서 캐서린 깁슨과 줄리 그레이엄(2010년 줄리 그레이엄이 사망한 후에도 ‘깁슨-그레이엄’이라는 공동 필명을 사용한다)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경제의 판을 새롭게 짜고자 했다. 자본주의 담론 자체가 비자본주의적인 실천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깁슨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도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이 일으킨 변화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를 종합하면, 페미니스트들은 1960~80년대에 걸쳐 여성의 삭제된 노동을 알리는 캠페인과 행진을 조직했다. 1998년 뉴질랜드의 메릴린 웨어링은 <무를 위한 계산>(Counting for Nothing)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의 노동이 국가 경제에서 계산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 발전과 좋은 삶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덩컨 아이언몽거 등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여성의 노동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작업에 나섰다. 오늘날 돌봄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논의는 이들 부불노동(unpaid work)의 발견과 측정, 표준화된 데이터 수집 같은 사회기술적 성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회운동이 오랫동안 문제제기하고 지지해온 것들이다.

페미니즘은 이처럼 경제가 지불노동만으로 구성된다는 상식에 도전해왔다. 깁슨 교수는 ‘경제’에서 빼앗긴 몫을 도로 찾아오는 ‘탈환’의 주된 출발점으로 ‘다양한 경제’(diverse economy)를 빙산의 이미지로 가시화할 것을 제안했다. 수면 위에는 자본주의 기업에서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지불노동이 자리한다. 반면,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있고, 비자본주의적인 공동체 집단들이 있으며 가사노동, 친인척 돌보기, 공동체, 봉사활동, 협동조합 등 경제흐름 자체가 비시장적인 것들도 존재한다. 지불노동의 이면에 삶을 지탱하는 다양한 실천과 장소, 흐름이 숨겨져 있다는 페미니즘의 통찰을 반영한 얘기다.

또 깁슨 교수는 호주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아주 적은 장애연금으로 살아가는 조지프의 사례를 들려줬다. 조지프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돌보고, 동네 학교의 양계장을 관리하며, 자신이 만든 사회적 기업 ‘플레이’를 무보수로 운영하고 있다. 플레이(PLAY: Pleasure, Labor, Yakka)는 정신질환을 겪는 남성들의 네트워크로서 동료애를 키우고 공동체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하지만 그의 삶은 지불노동과 소비자로서의 시민만을 특별히 대우하는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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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깁슨 교수는 조지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호주에 더 많아지기 위해선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늘리며 먹거리를 자급하고, 환경을 복원하면서 자연과의 접점을 늘리자는 제안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가정, 공동체, 일터,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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