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선 질문·논쟁하는 '하브루타' 교육 선풍적 인기
태도·발표교정 등 학원가 세분화된 수업으로 학생 모집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 워킹맘 박모(서울 마포) 씨는 최근 6세 딸 아이를 위한 독서토론수업을 시작했다. 매달 12만원을 내면 일주일에 한번 교사가 찾아와 함께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과 답을 이어가고, 다시 한주 동안 읽어야 할 책들을 지정해 주는 방식이다. 박씨는 "요즘은 워낙 독서교육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엄마가 일일이 챙겨줄 시간이 없다 보니 방문학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최모(수원 영통) 씨는 지난달 과학탐구토론대회를 준비하느라 이웃 엄마와 함께 대학생 과외교사를 구했다. 그동안 학원에서도 틈틈이 준비해왔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수상경력이 있는 선배가 도움이 된다고 해 특별히 수소문했다. 최씨는 "아이 2명에 선생님이 딱 붙어 토론 개요를 짜는 법부터 토론 과정에 빠져서는 안되는 부분들까지 꼼꼼히 짚어준다"며 "덕분에 예선 격인 지역대회를 무난히 통과해 과외비가 아깝지 않다"고 자랑했다.
대선 주자들이 TV토론회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토론식 수업 또는 토론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가올 4차산업 시대에는 암기식 공부나 정해진 정답만을 찾기보다 토론을 통해 능동적인 사고력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교사나 학부모들 모두 공감하면서도 아직 학교 교육만으로는 미흡하다며 토론 학원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토론수업 확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학교생활기록부 위주로 변한 입시정책이다. 학생부 기재 항목 가운데 '독서활동'의 비중이 커지면서 독서와 연계된 활동수업의 일환으로 토론식 수업이 주목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치동과 목동 학원가 등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토론하고 논쟁하는 이른바 '하브루타(유대인의 정통 교육방법)' 교육이 입소문을 타면서 특정 주제를 놓고 질문을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비교하고 논쟁하는 수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에 대학 입시나 특목고 대비반으로 집단면접이나 독서토론, 영어 디베이팅(논쟁) 등을 가르치던 학원들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더욱 세분화된 토론수업들을 내놓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자유학기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토론과 실습 위주의 수업을 통해 진로탐색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기 생각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특강마저 등장했다.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강사는 "학원에서 말하는 태도와 발음, 말할 때의 속도 등은 물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자세, 토론을 주고 받는 매너까지도 교정해 준다"며 "토론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면 이는 글쓰기(논술)로도 이어지고 대학에서는 발표 수업, 사회에 나가서는 취업 면접에까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토론 사교육이 이처럼 번창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토론 수업은 여전히 뒷전이다. 입시에 매몰된 교육과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중학교 교사(서울 한남동)는 "교실에서 처음 토론수업을 진행할 때면 유독 자신 있게 목소리 높여 자기 의견을 말하는 적극적인 아이들이 오히려 잘난 척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며 "교실에서 조차 자기 주장을 앞세우거나 튀는 걸 자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
대립토론 전문가인 박보영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토론이라고 하면 얼굴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들이 제대로 된 대립토론을 배우면 감정적이 아닌 상대 주장에 대한 근거 있는 반격을 하며 토론을 즐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험 평가대상이 아닌 토론수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데 대해 교사와 학생들 모두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한 고교 교사(경기 분당)는 "해마다 조금씩 바뀌는 입시제도에 따라 수업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각종 방과후수업에 동아리 활동, 심화수업, 논술ㆍ독서토론 등 종류가 너무 다양해 교사가 토론수업에만 집중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회적 이슈를 수업시간에 다룰 때에는 자칫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서울형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가칭)'을 구상중인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이 논쟁을 통해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며 "다만 주제 선정이나 진행 과정에서 토론이 편향되지 않도록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