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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통영 '망산봉수대'에서 청동기시대 바다 제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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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사유적·군사시설 등 다양한 흔적 발견

뉴스1

청동기시대 석검(매납유물) 출토 모습. (문화재청 제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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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경상남도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에서 청동기 시대 해상 제사유적 비롯해 조선시대 봉수대 시설, 러일전쟁 당시 군사시설 등 다양한 흔적들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7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 경상문화재연구원(원장 노태섭)이 조사 중인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를 발굴한 결과, 청동기 시대 해안 제사유적을 비롯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있던 당시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이 관할했던 봉수대 시설, 러일전쟁과 관련 있는 신호소 유적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이 사단법인 한국매장문화재협회(회장 조상기)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비지정' 매장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통영 한산도 봉수대는 한산도의 정상인 해발고도 293.5m의 망산에 위치해있다. 그간 임진왜란과 관련 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성격이 모호한 상태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망산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의 내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이 안에서 청동기 시대 대표 석기인 '간돌검' 1점이 들어있는 수혈(竪穴, 구덩이)를 찾아냈다. 문화재청은 "이 수혈은 부안 계화도유적, 여수 세구지유적, 서천 옥북리유적 등과 같이 풍어(豐漁)와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 이뤄진 청동기 시대 해상 제사유적으로, 지금껏 발견된 사례가 드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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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수대 건물지 전경.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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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정확한 문헌기록 없이 주민들의 전언 등을 통해 한산도 옛 진영인 통제영이 설치됐던 시기에 운영된 봉수대로 알려졌으나,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 사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봉수대 내에서는 러일전쟁과 관련된 '신호소'도 확인됐다. 신호소란 해상감시, 선박과 교신, 기상관측, 인접 신호소, 통신소와 연락을 하는 곳이다. 문화재청은 "신호소 내부에서는 당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과 석탄, 일본자기 완(碗), 시세이도사 제품인 크림치약 용기 등이 나왔다"며 "벽체와 지붕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 군부가 봉수대 관련시설을 신호소로 급조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한산도 망산봉수대는 한 장소에서 청동기 시대 제사유적, 조선 시대 봉수의 핵심시설, 러일전쟁 당시 일본 군부가 사용한 신호소 유적이 골고루 확인돼 한반도 주요 군사시설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역사적·지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 발굴조사 성과는 27일 오후 2시에 공개되는 발굴현장(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산243)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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