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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Bio & Tech] 녹내장에 희망의 빛…20년만의 신약 개발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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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주도하는 박기호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

매일경제

서서히 시신경이 죽는다. 강한 빛을 쬐면 잠시 사물이 안 보이는 것처럼 군데군데 시야를 가리는 '암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암점이 생겨도 본인은 모른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보인다. 뇌가 우리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시신경이 심하게 손상된 후에야 튜브를 눈에 대고 보는 것처럼 주변이 뿌옇게 되면서 시야가 좁아진다.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이미 말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병, 녹내장이다.

안구 내부에서 적절한 압력이 유지돼야 우리 눈의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이 안구의 압력을 '안압(眼壓)'이라고 한다.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안압은 눈 속을 채우고 있는 액체인 '방수'의 생성과 배출에 의해 좌우된다. 이 방수를 배출시켜 안압을 떨어뜨려야 녹내장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다행히 치료제가 있다. 이미 죽은 신경을 살릴 수는 없지만, 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매일 눈에 넣어 추가 손상을 막는 원리다. 현재 많은 녹내장 환자들이 프로스타글란딘 제제 치료제(안약)를 사용하고 있다. 오래 사용해온 만큼 효능이 입증돼 있지만, 충혈이 잘되는 등의 부작용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약을 끊으면 바로 안압이 올라가고 시신경이 손상되기 때문에 10년, 20년 장기적으로 점안해야 하고 너무 늦게 발견하면 결국 실명에 이르고 만다.

이런 가운데 20년 만에 '녹내장 신약'이 한국에서 개발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우리 바이오벤처의 신약 후보물질로 전국 대형·종합병원 10곳이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임상을 진행하는 박기호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이 신약 물질에 대해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안압을 떨어뜨리는 방법에는 방수 생산을 줄이거나 이 물이 빠져나가는 '메인 하수도'와 '보조 하수도'를 조절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사용해온 치료제가 '보조 하수도'로 물을 빠져나가게 한다면, 이번 신약 후보는 '메인 하수도'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존 치료제보다 더 생리적인 약제라고 볼 수 있죠."

가장 큰 특징은 충혈이 잘되는 기존 약제의 부작용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충혈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젊은 여성이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진 환자들은 이런 부작용 때문에 방수 생산을 억제하는 다른 치료제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방수 생산 억제제인 베타차단제는 천식 환자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 등에게는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기존 치료제들의 단점을 해결한 이번 신약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매일경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임상 2상 시험을 마쳤다. 이번 한국 임상은 세계 최초로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로 이뤄진다. 현재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10개 병원에서 임상시험 환자를 모집 중이다. 회사 측은 한국 임상 2상을 연내 마무리하고 2020년께 허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이번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박 교수는 "해외 임상에서 충혈이 잘되는 기존 약제의 부작용을 개선했고, 약효가 동등하다는 검증 결과가 나왔다"면서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를 대상으로 한국에서 이런 대규모 임상 데이터가 처음 나온다면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상안압 녹내장이란 안압이 정상 범위에 있는데도 녹내장이 발병하는 환자를 말한다. 시신경이 취약해 정상안압에도 손상이 일어나거나, 안압 변동폭이 정상인보다 커서 시신경에 무리가 가는 경우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에는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가 대부분이다. 유럽과 미국도 개방각 녹내장 환자 10명 중 3~4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녹내장 환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녹내장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40세 이상 녹내장 환자 유병률은 3.5%로, 전체 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안과를 방문해 우연히 발견되거나, 건강검진에서 진단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 녹내장학회는 40세가 넘으면 1년에 한 번 '눈 검진'을 받으라고 강조한다. 병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혈압을 재듯 가까운 안과를 찾아 간단한 검사를 받으면 된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비용도 저렴하다. 특히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가 많기 때문에 안저촬영검사가 필수다. 밝은 빛을 쏘아 동공을 통해 눈 속을 직접 관찰하는 것으로, 녹내장 위험군뿐 아니라 당뇨·고혈압·만성신장염 등 혈관이 약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박 교수는 "녹내장 위험인자로 고령, 근시, 가족력 등을 꼽는다"면서 "고도근시나 가족력이 있는 위험군이라면 젊은 분들도 안과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한국녹내장학회 회장을 역임한 박 교수는 뛰어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녹내장학회 공식 학술지 부편집장으로 위촉됐고 '대한민국 최고 명의가 들려주는 녹내장'이라는 환자용 안내서를 펴내기도 했다.

[신찬옥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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