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개미 탐지견’ 출장 동행해보니
25일 경기 구리시 동구릉 수릉 재실에서 흰개미 탐지견 ‘가람’이 목재 기둥의 흰개미 서식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을 찾은 영국의 탐지견 전문가 데이비드 레이먼드 씨(오른쪽)는 에스원탐지견센터 훈련사 박병배 씨에게 훈련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제공 |
“‘마루’가 흔들거리는 목조 바닥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네요. 다시 성공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갖게 도와줘야 합니다.”
25일 오후 조선 왕릉 9개가 있는 경기 구리시 동구릉에 ‘마루’가 나타났다. 마루는 ‘흰개미 탐지견’이다. 목조문화재를 손상시키는 흰개미를 찾아내는 일이 마루의 임무다. 이른바 ‘문화재 지킴이’다. 이날 마루를 관찰하고 조언한 사람은 영국 웨스트미들랜드 경찰견 훈련센터(WMP)의 교관 데이비드 레이먼드 씨. 탐지견의 탄생부터 교육까지 일생을 책임자는 레이먼드 씨는 훈련 조언을 위해 삼성물산 초청으로 내한했다.
이날 동구릉에는 마루와 함께 ‘가람’ ‘아라’가 함께했다. 세 마리 모두 4년생 암컷(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으로 흰개미 탐지견이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문화재의 약 30%(3900여 곳)가 나무로 만들어졌다. 죽은 나무를 먹고 배설하는 흰개미가 문화재에 침투하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크기가 작고 내부를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보다 후각이 최대 100만 배 뛰어난 탐지견을 투입하는 이유다. 탐지견이 흰개미를 찾은 건 마약 및 폭발물 탐지견과 같은 원리다. 흰개미가 내뿜는 페로몬 냄새에 반응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문화재청과 삼성생명의 탐지견 지원활동 협약이 현재 에스원, 삼성물산으로 이어져 진행 중이다.
이날 왕릉 재실의 외부를 확인하던 가람이는 왕릉 재실의 한 기둥 앞에 갑자기 멈췄다. 영어로 ‘뛰는 사람’이라는 뜻의 견종 이름 ‘스프링어(springer)’처럼 세차게 흔들던 꼬리도 숨을 죽였다. 탐지견 양성 10년째인 훈련사 박병배 씨가 “흰개미 흔적을 찾은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마루와 아라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먼드 씨는 “여러 탐지견이 같은 반응을 내는 건 훈련이 매우 잘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레이먼드 씨는 2012년 WMP에서 태어난 마루와 가람 아라를 직접 키운 뒤 한국으로 보낸 ‘친정 엄마’이기도 하다.
아직 훈련 중인 아라를 제외한 2마리는 지난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15차례나 출장을 다녔다. 한 번 출장 때마다 3∼5일씩 걸린다. 마루와 가람이는 지난해 문화재 2곳에서 흰개미를 찾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소영 복원기술연구실 연구관은 “탐지견이 찾은 흰개미 정보는 방충작업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탐지견과 사람의 교감. 탐지견마다 성격, 좋아하는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13년간 특수견을 길러낸 레이먼드 씨가 강압보다 화합을 강조하는 이유다.
“탐지견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냄새를 잘 맡고, 훈련사를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훈련을 즐기는 것이지요. 한국의 멋진 문화재를 지키는 탐지견들을 만나면 따뜻한 눈으로 응원해주세요.”
구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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