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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 지친 관객 사로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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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민식·곽도원 주연 <특별시민> 26일 개봉

적나라한 선거판 통해 정치 현실 민낯 그려

실감나는 정치언어·배우들의 호연은 장점

스토리의 힘·개연성 부족한 전개는 아쉬워



한겨레

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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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이은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 조기에 치르는 대선까지…. ‘영화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현실’ 앞에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정치영화가 과연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특별시민>(26일 개봉)은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치 9단 변종구(최민식)와, 이에 맞서는 인권변호사 출신 여성 후보 양진주(라미란)의 선거전을 통해 한국 선거판의 적나라한 민낯을 그려낸 영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 영화는 우선 선거의 정의부터 ‘현실적’으로 바꿔놓는다.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서울시장을 발판으로 청와대까지 노리는 야심가 변종구는 정치공작의 달인 심혁수(곽도원)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내세운다. 여기에 젊고 유능한 광고인 박경(심은경)이 패기 넘치게 가세하면서 변종구 캠프는 선거전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간다. 상대 후보인 양진주 캠프는 미국 유학파인 아들 스티브 홍(이기홍)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이며 지지율 추격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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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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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여러 사건을 씨줄 날줄로 엮어가며 치열한 선거판을 조명한다. 몰카의 일부분만을 공개해 상대 캠프의 비난을 끌어낸 뒤 이를 역공의 기회로 삼는 모습, 지하철 공사장 부근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책임 공방을 벌이는 모습,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인 아내가 언론의 집중 타격을 받자 다른 사건으로 물타기에 나서는 모습까지. 변종구 캠프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치공작과 모략은 관객들에게 현실정치의 기시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색깔이 전혀 다른 후보와 야합을 하거나, 아들 문제에서는 균형감을 잃는 등 양진주 캠프가 보여주는 양상도 결코 낯설지 않다.

선거전에 정책 경쟁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 역시 극단적이지만 현실정치와 닮았다.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네거티브만 일삼는 두 캠프의 전략에 정책은 실종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후보가 실검(실시간 검색) 1위”라는 사실뿐이다.

정치인들의 현란한 말잔치는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다. “영원한 내 편은 없어. 혼자 가는 거야. 독고다이!”, “색깔? 색깔은 섞다 보면 다 까만색 되는 거야”, “맞고 틀린 게 어딨어? 이 판에” 등 영화 속 정치언어는 낯뜨거울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매력적이다.

배우들의 명연기 역시 볼만하다. 야비하면서도 능글맞고, 솔직한 체하면서 본성을 숨기는 변종구의 이중성을 연기하는 최민식의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여당 대권주자인 김 의원과, 차기 대권주자가 되고 싶은 변종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며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심혁수 역의 곽도원 역시 최민식과 겨룰 만한 중량감 있는 연기를 펼친다. 건달 출신 건설사 대표 역의 박혁권은 단 몇 장면만으로 영화에 ‘코믹한 활기’를 불어넣으며 ‘신 스틸러’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선(또는 차악)이 결국 악(또는 최악)을 이기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구도로 카타르시스를 끌어냈던 최근 한국 영화의 천편일률적 문법에 매몰되지 않은 것도 영리한 선택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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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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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을 점층적으로 쌓아가다 절정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병렬식으로 나열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실패한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발생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선거 기간 전체를 뒤흔들 만큼 파괴력이 큰 사안인데도 대응이 허술하거나 너무 쉽게 해결돼, 두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선거라기엔 다소 한가하다는 느낌을 준다. 치밀하고 꼼꼼한 스토리의 힘으로 사건을 끌어가며 그 안에서 선거와 정치, 현실을 관통하는 통찰력까지 보여주길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또 선거판에 뛰어든 젊은 피 박경의 심리 변화가 개연성 있게 그려지지 못하면서 그가 부르짖는 ‘유권자의 힘’이란 마지막 메시지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박인제 감독은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영화”라고 설명했지만, 선거와 정치의 추악한 면만 부각하다 보니 되레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지난 몇개월 동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정치 현실에 지친 관객들의 ‘표심’을 온전히 사로잡을, 좀 더 울림이 큰 ‘한 방’이 아쉽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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