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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젊을 때 시작한 노후대비가 의료파산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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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부동산 회사를 퇴직해 요코하마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나카야마 사부로(75)는 주택형 노인홈 입주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자신이 여생을 마친 뒤 홀로 남을 부인이 노쇠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주택형 노인홈은 치매와 중풍에 걸리지 않아도 자립 보행이나 자발적 취사가 어려워진 고령자들이 입주해 생활하는 유료 실버타운이다. 일본에선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이 같은 노인홈이 급증하고 있다. 관건은 입주 비용이다. 연금이 부족한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연금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특별양호노인홈이 있지만 이곳은 치매와 중풍 같은 중대 질환에 걸려 돌봄이 필요하다는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돼도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고령자 급증으로 시설 부족이 극심해 대기자가 52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결국 고독한 독거생활에 직면하게 된다.

500만 명을 넘어선 독거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차츰 취사가 불가능해지거나 생활비 부족으로 식사를 거르게 되고 결국 고독사로 이어진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고독사는 연간 3만 건에 이른다. 이같이 극빈생활에 처한 고령자들은 ‘하류노인’이라는 신조어로 불린다. 이들은 월 5만 엔도 안되는 국민연금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반면 ‘상류노인’의 삶은 딴판이다. 도쿄 동쪽 지바현에 살고 있는 시타미치 도오루(65)는 전 국민 대상의 국민연금에다 직장생활 때 불입했던 후생연금을 받고 있다. 게다가 채권형 투자신탁 적립금까지 갖고 있어 부족함 없이 부인과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지방공항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했지만 올해부터는 취미생활만 하고 있다. 퇴직 전 배워둔 오키나와 전통악기 산신(三線) 동호회 활동을 즐기고 있다. 수시로 오키나와를 오가면서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기량을 연마한다.

이같이 일본은 노후 준비의 정도에 따라 노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금을 비롯해 노후자금이 마련돼 있으면 축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참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는 교훈이다. 상류노인은 돌봄서비스까지 제공되는 유료노인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밥이며 빨래, 방 청소까지 모든 생활편의가 제공된다.

비용은 만만치 않다. 화장실이 딸린 15㎡ 크기 원룸에 불과해도 여생을 마칠 때까지 최소 15만 엔의 비용을 매달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치매와 중풍,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환이 심해지면서 돌봄서비스를 받게 되면 별도 비용을 내야 한다. 비용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90%를 부담해주지만 요양 등급이 높아지면 개인 부담도 최고 2만5000엔(27만원)으로 늘어난다. 입주비까지 합하면 매달 20만 엔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살고 있는 최모(73)씨는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업으로 상당한 노후자금을 마련한 뒤 환갑 이후에는 매주 골프를 하면서 노후의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69세가 되던 해 갑자기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손이 떨리고 몸 동작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최씨는 젊은 시절 노후 대비 덕분에 의료비 걱정이 없어 안정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후자금이 넉넉지 않으면 오래 살수록 고난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치매나 중풍, 파킨슨병이라도 발병하면 와상환자 신세가 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원을 받아도 2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본인부담이 매달 50만~60만원에 달하니 이마저도 감당을 할 수 없어 파산상태에 이르는 고령자가 적지 않다.

아키야마 히로코 도쿄대 고령사회총합연구기구 교수는 “건강수명이 끝나는 70세부터는 노인성 질환과의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에 나이 들어 장수의 축복을 즐기는 것도 환갑 이후 불과 10년 남짓 불과하다”며 “생애의료비의 절반을 쏟아붓는 70세 이후를 대비해 철저한 재무적 준비와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에 따르면 생애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65세 이후 쏟아붓고 있다. 그 비용이 8100만원에 달하지만 이는 노후의료비 예상액의 4배를 넘는 액수다. 도쿄·요코하마=김동호 기자 dongho@joongang.co.kr

김종윤.김동호 기자 kim.jong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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