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캐슈넛·피스타치오 수입 급증, 호두도 미국산 '인기'
국산 호두 1㎏ 20만원→10만원 반토막…재고 늘고, 폐농 속출
바쁜 출근 시간에 맞춰 선택한 간편식이다. 건강에도 좋은 '웰빙 음식'이라고 해 견과류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한 줌 견과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가 먹는 견과류는 100% 수입산이다. 미국산 아몬드·호두·마카다미아, 인도산 캐슈넛, 브라질넛 등이 들어 있다.
정씨는 수입 농산물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지만 견과류에 대해서는 그런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고등학생인 딸에게도 건강식으로 챙겨줄 정도다.
미국산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등으로 대표되는 견과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생긴 일이다.
◇ 견과류 시장 급성장…주전부리 넘어 '대세 영양식' 변신
과거 호두·땅콩 등에 한정됐던 견과류는 어른들의 술안주나 간식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다양한 맛과 영양이 가미된 외국산이 수입되고 웰빙 바람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몇 해 전부터는 4∼5종의 견과류를 소포장한 '한 줌' 상품이 등장해 시장에 불을 붙였다. 단순한 '주전부리'를 넘어서 수험생이나 임산부 영양식이나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식으로 인기 끌면서 대형마트에 즉석 로스팅 코너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토종 견과류의 대표 주자인 호두는 정반대 처지로 몰리고 있다. 견과류 시장이 팽창할수록 오히려 소비가 줄고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수입산 견과류에 밀려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어서다.
호두 주산지인 충북 영동의 황간농협 관계자는 "값싼 미국산 호두가 수입되고, 중국산 밀수품까지 횡행하면서 국내 호두시장이 완전히 붕괴됐다"며 "과자 등 가공식품 원료는 물론이고, 전통 명절인 정월대보름 부럼까지 외국산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는 한해 230t의 호두가 생산돼 국내 시장의 30%를 공급한다. 이 농협 수매량만 50∼80t에 이른다.
2000년대까지 이곳서 나오는 껍데기 벗긴 호두 1㎏는 20만원을 웃돌았다. 흉작인 해는 3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이 농협의 호두 판매가격은 10만8천원(택배비 포함)이다. 그나마 작년 수매한 50t 중 31t은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 있는 상태다.
농협 관계자는 "수입 호두가격이 1㎏에 2만원에 불과해 국산과는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여기에다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까지 밀려들면서 국산 호두가 설 땅을 잃었다"고 말했다.
산림청이 집계한 지난해 호두 수입량은 1만4천42t으로 5년 전인 2011년 9천431t에 비해 48.9% 늘었다.
이 기간 아몬드는 50.7% 늘어난 2만3천330t이 수입됐고, 캐슈넛·피스타치오도 39.1%와 83.4% 늘어난 1천856t·508t이 들어왔다.
여러 가지 견과류를 섞은 믹스넛 제품 수입도 4만8천323t에 달한다.
◇ "농사지으면 손해"…호두 농사 포기 속출
충북 영동에서 3만여㎡의 호두 농사를 짓는 손모(64)씨는 지난해 400여 그루의 호두나무 중 150여그루를 베어냈다. 호두 값 하락으로 농사짓는 게 힘들어지면서 복숭아·체리로 품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미국산 호두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가 베어낸 호두나무는 15년 넘은 큰 나무다. 풍년이 들면 1그루에 50㎏ 넘는 호두를 매달아 100만원 이상 벌어주던 나무다.
그러나 작년에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1그루에 30만원을 손에 쥐는 것도 빠듯했다. 호두 수확에 투입되는 인건비가 하루 2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타산 맞추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호두는 국내 시장의 90%를 미국산이 점유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 속까지 미국산 일색이다.
홍수만 영동군호두연구회장은 "호두는 설과 대보름에 70∼80%가량이 유통되는 데, 외국산 견과류가 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는 몇 해 안에 국내 호두 농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산림청이 집계한 지난해 전국 호두 재배면적은 1천904㏊다. 아직 통계상 재배면적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등 산지 분위기는 감소세가 뚜렷하다.
영동군 관계자는 "작년 이후 호두 값이 곤두박질하면서 나무를 베어내는 농가가 늘고 있다"며 "향후 1∼2년 안에 1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림청은 호두를 포함한 79개 품목의 임산물 수급과 재배 동향을 매년 조사하고, 생산 및 유통시설 현대화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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