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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중앙시평] ‘무조건 예스’가 동맹을 망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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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예스만 하다 위기 때

예측못한 행동하면 더큰 해악

맹목적 고정관념 지키기보다

국익따라 노,예스 할수있어야

중앙일보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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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가 구설에 올랐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 실린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한 문장이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문 후보는 “저도 친미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에 예스(yes)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국익상 필요하면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연설명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도 3월 16일자 온라인 정정보도에서 문 후보 발언의 맥락이 “잘못 언급됐다(misstated the context)”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 측의 비판은 여전히 거세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를 ‘대권욕에 사로잡힌 반미주의자’로 비판하는 이들마저 있다.

필자가 최근 강의 중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에서는 ‘위기의 한국 정치와 외교정책’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만찬 토론에서 몇몇 인사들은 당시의 발언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시하라 신타로, 모리타 아키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아시아’(이시하라, 마하티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왕샤오둥) 등과 견주며 크게 우려했다. “반미면 어떤가”라고 했던 ‘노무현의 DNA’가 문 후보에게도 흐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이고 반사적인 외교행태를 감안할 때 한국 측 지도자마저 이러한 발언과 처신을 반복한다면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지한파로 알려진 전직 국무부 관료 두 사람의 시각은 달랐다. 동맹을 국익 추구의 수단이라고 정리하고 나면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좁혀 나가는 게 오히려 건전한 동맹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무조건 ‘예스’했다가 정작 위기가 닥쳐온 순간에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동맹에 가장 큰 해악이 된다는 견해였다.

필요한 경우 미국의 견해를 반박하고 또 사안에 따라서는 파격적으로 협력할 때 더 큰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가 반미 성향을 강하게 의심했던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건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어려운 과제들을 과감히 타결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었다. 한국의 지도자는 ‘노’를 말하는 법도 배워야 하지만 국익에 따라 단호하게 ‘예스’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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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미국 내 지한파들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한국의 새 대통령이 ‘노’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첫째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행보다. 대북 예방타격을 포함한 군사행동, 주한미군 주둔비 전액 부담 요구, FTA의 일방적 파기 같은 사안은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1980년대 말 미국의 통상압력에 한국 정부가 저항했던 일이나 94년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영변 핵 시설 정밀타격 계획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던 김영삼 정부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막대한 인명 혹은 재산피해를 야기할 사안을 적극 찬성할 지도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

둘째는 지역분쟁에 연루될 공산이 큰 경우다. 예컨대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거나 동중국해 혹은 남중국해에서 중·일 혹은 미·중 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은 동맹인 한국에 군사적 참여를 요청하겠지만 한국 측이 수락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높은 대(對)중국 경제의존도는 물론 지정학적 취약성 때문이 다. 2003년 부시 행정부가 밀어붙였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당시 노무현 정부가 ‘우리가 바라지 않는 지역분쟁에 연루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원칙을 제시했던 경우가 그 실례 다.

마지막 쟁점으로 이들이 꼽은 것은 제3국에 대한 전투병력 파병이었다. 상황에 따라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이라크나 시리아에 전투병 파견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외국민은 물론 서울도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락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게 이들의 관측이었다.

이렇듯 차기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익에 기초해 ‘노라고 말할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오히려 노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맹목적 고정관념이 불러올 후폭풍이 더 클 수도 있다. 앞에서는 ‘예스’만 하다 결정적 국면에서 우리의 행보가 달라지면 신뢰가 무너지고 국익을 해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중 관계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론은 사뭇 명확하다. ‘한국은 노라고 말할 수 있는가’가 대선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오히려 국익을 위하는 길이다. 섣부른 친미·반미 논란이 한국의 외교에 불러올 대가를 생각할 때 이를 포퓰리즘의 불쏘시개로 삼는 일은 전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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