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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당분간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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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화하면서 삼성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당장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23일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당분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내용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검토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최근 여러 변수로 인해 당분간 추진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사실상 의견이 모아진 상태인 것은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총에서 밝히더라도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 정도의 표현을 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말 이사회를 열어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지주사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에 따른 법률, 회계 등 이슈 검토에만 6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작업은 올해 5월 검토 결과와 향후 계획을 밝히고 본격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시장 전망이 많았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초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가 보유 중인 자사주 가치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제안한 상태여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특검 수사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됨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큰 그림에서 진행할 조직이 사라졌다.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강화에 대한 비판 여론도 부담스러워졌다. 특히 특검 조사 과정에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고,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놓고도 논란이 커진 상황이다. 삼성의 지배구조 전환 과정 자체를 색안경 끼고 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자사주 마법'을 활용한 오너 지배력 강화를 여론이 어떻게 볼지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제한돼 있다. 그러나 기업을 자사주를 포함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투자회사'와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회사'로 분리하게 되면 기존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게 된다.

삼성전자는 보통주 기준 자사주 14.7%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위해 '삼성전자홀딩스'(가칭)와 '삼성전자'로 인적 분할할 경우 삼성전자홀딩스는 기존 자사주 14.7%를 통해 '삼성전자홀딩스→삼성전자'라는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주주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고 삼성전자홀딩스 지분을 늘리면 적은 금액으로도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에 부정적인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은 기업 분할 때 지주사 보유 자사주에 대해 분할회사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공정거래법상 삼성전자홀딩스는 삼성전자 지분 20%를 시장에서 사들여야 한다. 시가총액 294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덩치를 감안할 경우 이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사상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를 맞은 삼성이 이러한 정치권의 분위기를 무릅쓰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국회와 정부 관련 부처를 오가며 입장을 설명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오해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 내부적으로 강한 상황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사실 국내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통해 당장 비용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세대 상속 때는 50~60%대 상속·증여세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 최종 부담은 동일한 셈"이라며 "순환출자 대비 선진화된 지배구조인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송성훈 기자 /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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