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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한국, 2017 봄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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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경언의 시동詩動걸기

허수경의 산문, ‘독일, 2015 가을의 단어들’
발견(2015년 겨울호)

한 달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후에 마음을 더 쓸 지금이지만, 혹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서 살피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시기인 듯싶다. 여기의 현실을 차분히 살피기 위해 잠시 우회하여 재작년 겨울, 쾰른에서의 일을 말하려 한다.

당시 나는 일주일 정도 독일에서 머물고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독일의 연말은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폭죽을 터뜨리며 거리를 들쑤시고 다니는 때였는데(독일은 이 시기에만 합법적으로 폭죽을 사고판다), 이때 ‘젊은이’란 원주민, 이주민 가릴 새 없이 ‘연말을 누리는 여느 사람들’을 이른다. 어떤 이는 술을 병째 들고 다니며 폭죽을 땅 위에 눕혀 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금지된 약물에 취해 있기도 했다.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중 누가 위험을 조장했는지 명확히 밝히라 한다면, 글쎄, 그건 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당시 몇몇 신문기사에선 독일 정부의 친(親) 난민 정책을 경계하는 입장과 난민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입장이 뒤섞여 쾰른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력 사건을 모두 ‘이방인’의 소행으로만 적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렇게 박힌 글자는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친구의 얘기에 따르면, 한 신문기사에서는 ‘시민전쟁’이란 말을 써서 사람들의 불안을 부추기기도 했단다. 독일 언론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도 그날의 일은 마치 ‘특정 무리’의 소행이 자명하다는 듯 받아들여졌다. 해당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와 함께 ‘그들’만 없어지면 된다는 논조의 글이 다수 올라왔던 당시의 에스엔에스(SNS) 타임라인을, 나는 기억한다. 누군가를 ‘따돌리는’ 일은 이렇게나 손쉽게 벌어졌다. 독일에 있는 허수경 시인이 2015년에 발표한 산문을 읽는다.

“집시가 들어오면 전염병이 돌고 그들은 마당에 널린 빨래와 아이들을 훔친다는 속설, 난민으로 들어온 타 종교를 가진 젊은 남자들이 이곳에서 자란 젊은 아가씨들을 빼앗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경계, 일자리, 교육을 받을 자리가 적어지며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걱정 등등 앞에서 정치는 무력하고, 잊었다고 믿고 있던 수많은 편견들이 다시 사회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중략) 무수한 인종차별의 언사들, 난민에 대한 극언들은 이 가을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낙엽만큼이나 무수하게 떨어져서 브라운빛의 천국을 이루었다. 브라운빛은 나치의 색깔이다. 그 야만의 빛 위에 ‘관용’의 무지개빛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이곳에는 아직도 많다. 아마도 2015년의 겨울은 그 두 빛이 독일을 덮을 것이다. 어느 빛이 더 강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겨울 내내 이현승 시인의 말대로 ‘불안은 우리의 항상심’이 되어 모두를 덮을지도 모른다.”(‘독일, 2015 가을의 단어들’ 부분)

우리라고 이로부터 자유로울까. 그럴 리 없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슬프게도 시인의 예상은 들어맞을 수 있다. 우리의 항상심이 된 어떤 감정이 현실을 육안으론 단박에 읽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 내내 불안해하고, 자주 비난하며, 쉽게 단정하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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