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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흔해서 자주 먹던 도시락 반찬, 지금은 귀빈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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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의 도란도란 식탁] 무말랭이 밥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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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말랭이 차(茶)가 대세다. 무릎 관절과 골다공증, 당뇨에 좋다는 보도 때문인지 밖에 나가면 무말랭이가 심심찮게 화제에 오른다. 식자층에 속하는 이들도 귀를 모으며 혹하는 눈치다. 한때는 블루베리가 세계 10대 수퍼 푸드에 속한다는 소문 때문에 과일 가게에서 일찌감치 동나기도 했다. 하여 너도나도 블루베리 농사에 뛰어드는 바람에 피해를 본 농가도 여럿 생겨났다.

특정 식재료를 마치 세상에서 하나뿐인 무슨 비약(秘藥)처럼 잔뜩 부풀리는 방송도 문제지만, 뭐가 어디에 좋다고 하면 우르르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국민성에도 문제가 있다. 무릎관절이 약하고 당뇨가 있으면 집에서 무말랭이 차나 마시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게 완치의 지름길이다.

생각해보라. 5060과 7080세대는 무말랭이를 신물 나도록 먹었다. 매콤달콤하고 국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시락에 만날 들어 있던 게 무말랭이 무침이다. 그 외에도 멸치볶음과 콩자반(말랑하고 가무레한 게 아니라, 딱딱하게 볶은 콩에 파와 마늘, 집간장을 넣어 성의없이 버무린 옛날 콩자반. 아 정말 싫어했다, 그 찝찔한 냄새만으로도!), 진미채 볶음과 김치 같은 단골 도시락 반찬들. 간혹 달걀프라이가 밥 위에 요염하게 올라와 있으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겨울이면 조개탄 난로 위에 켜켜로 얹힌 납작 도시락들. 인심 좋은 선생님은 수업하다 말곤 도시락 위치를 한 번씩 아래위로 바꾸도록 반장에게 시켰다. 그렇게 해야 양은도시락이 타질 않았다. 불땀 좋은 난롯불에 김치와 무말랭이가 자글자글 익어 가는 소리…. 저절로 군침이 돌았고, 둘째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후다닥 먹어치웠던 그 많은 도시락.

어려서부터 무말랭이를 그토록 열심히 장복했건만, 5060과 7080세대의 무릎은 왜 황소의 뿔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부실할까? 돌아보면 우리가 웰빙 음식이라고 떠받드는 것 모두 옛날 천민들이나 먹던 것이다. 이래서 세상은 재미지다. 흔해서 함부로 취급했던 쪼글쪼글한 무말랭이가 귀빈 대접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어쨌거나 무에는 '시니그린'이라는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기관지 점막을 강화하고 가래를 묽게 한다. 기침과 목감기 같은 질환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골초였던 정조대왕도 니코틴 배출 효과를 위해 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무를 가을볕에 꼬들꼬들 말리면 칼슘과 식이섬유가 풍부해져 뼈 건강과 당뇨에 좋다. 미세 먼지와 황사가 몰려오는 봄철, 무말랭이를 맛으로 한 번쯤 먹어도 좋을 것이다. 하여 오늘의 메뉴는 추억의 무말랭이 밥.

준비물: 무말랭이, 마른표고, 부추, 멸치육수, 양파, 뿌리 달린 대파, 참기름, 식용유, 간장, 후추, 달래간장(달래, 집간장 약간, 진간장 넉넉히, 고춧가루, 참기름, 식초).

1: 무말랭이의 군내를 없애기 위해 토막 친 양파와 뿌리 달린 대파를 넣고 팔팔 끓여 우린 물을 준비한다.

2: 물이 알맞게 식으면 무말랭이를 넣고 40분가량 불린 뒤 찬물에 씻어 건진다.

3: 마른표고도 미지근한 수돗물에 불린다.

4: 불린 무말랭이와 표고버섯을 꼭 짠 후 간장, 후추, 참기름으로 간한 다음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달달 볶는다.

5: 불린 쌀에 멸치 육수를 넣고 밥을 짓는다.

6: 뜸이 든 밥에 나붓나붓 썬 부추와 4를 함께 섞는다.

완성된 무말랭이 밥에 달래간장을 넣어 비비면 나른한 몸이 깨어나는 기분이랄까. 은은하면서도 상큼한 게 무말랭이에서 이런 맛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기품 있다. 끝으로 세상 모든 음식은 저마다 영양소를 지니고 있다. 특정 음식에 빠지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에게 듣던 잔소리,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현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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