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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FBI, 워싱턴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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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FBI 코미 국장, 미 하원 정보위 청문회 참석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스캔들 수사중” 밝혀

‘클린턴 이메일’ 사건 등 정치 이슈마다 개입

반클린턴에서 대선 뒤 반트럼프로 오락가락

워터게이트 사건 때와 비슷한 입지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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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쪽과 러시아의 공모는 수사 중이고, 오바마가 도청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20일(현지시각) 의회 청문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쪽의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증언을 함으로써, 연방수사국은 트럼프 취임 이후 가열되는 워싱턴 권력투쟁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코미 국장은 이날 하원 정보위에 출석해 연방수사국이 “트럼프 선거캠프와 관련된 개인들과 러시아 정부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또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사이에 협조가 있는지를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코미는 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도청을 당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가 없다”며 법무부도 관련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코미 국장의 이같은 증언으로 트럼프의 백악관은 범죄 수사의 문턱에 놓이게 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아주 중요한 일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큰 먹구름을 드리웠다”고 말했다. 연방수사국의 수사는 트럼프를 탄핵으로 몰고갈 수 있을 정도로 폭발력을 갖게 됐다.

이번 사태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사건으로 시작되어, 고비고비마다 연방수사국이 개입되면서 확산됐다.

2015년 3월 드러난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 사용 사건은, 2016년 7월 연방수사국의 불기소 처분 권고→7월말 위키리크스의 민주당 전국위 서버 해킹 자료 폭로와 이로 인한 러시아의 선거개입 의혹 증폭→10월말 클린턴 이메일 사건에 대한 코미 국장의 수사 재개 방침→11월초 코미 국장의 클린턴 불기소 처분 재확인→2017년 1월 연방수사국 등 미국 정보 수사기관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확인 발표→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 인사와 트럼프 측근들의 대화 감청 자료 언론 보도와 이로 인한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좌관 사퇴→3월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도청’ 주장→연방수사국 등 정보 수사기관 및 의회에서의 트럼프 주장 부인으로 확산되어 왔다.

결국 이 사태는 코미 국장이 하원 정보위에서 트럼프의 도청 주장을 일축하고, 트럼프를 겨냥한 수사를 공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연방수사국은 사태를 증폭시키는 오락가락 행보로 구설에 올랐다.

애초 클린턴에 대한 불기소 처분 과정에서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법무부 쪽에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대선 선거일이 임박해 코미 국장으로부터 클린턴 이메일 사건 재수사 방침이 흘러나오고, 다시 당초의 불기소 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지난 대선 막판에 표심을 흔든 최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측근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클린턴 및 민주당에 반감을 갖는 연방수사국 뉴욕지부의 인사를 동원해 재수사 방침을 압박하고 이를 흘렸다고 <가디언>이 보도하기도 했다. 어쨌든 코미 국장은 불문율인 수사상황 진척을 흘리고 나서는 당초 불기소 방침을 재확인하는 불투명한 행보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연방수사국은 트럼프랜드(트럼프의 나라)’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연방수사국 내의 기류는 일변했다. 연방수사국은 중앙정보국(CIA) 등과 보조를 맞춰, 지난 1월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을 막고 트럼프 후보를 도우라는 비밀공작을 명령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러시아의 비밀공작에는 민주당 전국위 서버 해킹과 이 해킹자료를 위키리크스에 건넸다는 것도 포함됐다.

이때부터 연방수사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보 수사기관에서는 트럼프 쪽의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각종 수사 정보들이 언론에 유출됐다. 트럼프는 이런 언론보도를 이유로 정보 수사기관의 ‘청소’를 공공연히 다짐하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 타워를 도청했다고 주장한 것은 연방수사국 등 미국 정보 수사기관 내의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미국 정보 수사기관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능가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연방수사국 상황과 비슷한 점도 있다. 닉슨 대통령에 의해 새로 연방수사국장에 임명된 패트릭 그레이는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에 개입했다. 당시 부국장 마크 펠트는 자신을 배제하고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가 진행되자, 이를 <워싱턴 포스트>에 제보했다. 당시 ‘딥 스로트’로 알려진 마크 펠트는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를 좌시할 경우, 연방수사국이 정치적으로 망가질 것으로 우려했다.

러시아 스캔들 사건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알 수 없으나, 연방수사국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쪽과 러시아의 공모 가능성을 이제는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미 몇가지 정황 증거들이 청문회에서도 제시됐다. 트럼프 선거캠프 간부인 카터 페이지가 모스크바로 가서 푸틴의 측근인 이고르 세신과 만났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럼프의 정치고문 로저 스톤도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와의 관계를 공공연히 밝혔고, 클린턴의 선대위원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들이 공개될 것이라고 미리 알리기도 했다. 스톤은 또 민주당 전국위 해킹 사건에 연루된 러시아 정보기관과 관계가 있는 온라인상의 ‘구시퍼 2.0’이라는 인물과 접촉한 것도 시인했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연방수사국의 수사는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미 국장은 수사가 지난해 6월에 시작됐고, 방첩수사로서는 “아주 짧은 기간이다”고 말했다. 이 수사가 트럼프의 운명에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치게 될 계기는 워싱턴의 권력지형을 바꿀 수 있는 내년 말 중간선거이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으로 복귀하면, 연방수사국의 수사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때까지의 연방수사국 수사도 중간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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