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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혼돈의 시대…선지식 만나는 책들 화제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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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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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상(像)이나 그림이나 조각에 절을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비록 흙덩어리나 썩은 나무에 절을 했더라도 성심을 다했다면 자기 마음이 정화된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로 인해 당신들과 세상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구도 수행자의 표상이었던 성철 큰스님은 자기 마음을 닦는 일이 곧 세상을 공경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혼돈의 시대다.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온통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져있다.

이 때문일까. 오래전 입적하신 큰 스님들의 삶과 말씀을 담은 책들이 눈길을 끈다.

최근 출간된 '성철 평전'(김택근·모과나무)은 한 달 만에 7쇄를 찍었다. 책의 두께와 3만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게 서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성철 평전'은 한국 불교의 상징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라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책은 은둔의 수행자가 세상의 참 스승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철저한 취재를 통해 복원해낸다.

1936년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동산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고 수행의 길에 들어선 스님은 8년의 장좌불와(등을 대고 눕지 않는 수행), 10년의 동구불출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스님은 종정으로서 한국 불교 정화의 기틀을 마련한 호랑이 같은 지도자이기도 했다. 스님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누구나 삼천배를 시켰다. 스님은 "감투와 돈 보따리는 소나무에 걸쳐두고 몸만 올라 오라"면서 "성철을 보지 말고 부처를 보라"고 일갈했다.

2003년 입적하신 청하 스님의 이야기를 다룬 '위대한 스승 청화 큰스님'(유철주·상상출판)도 출간됐다.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지식으로 존경받고 있는 청화 큰스님을 기억하는 제자 20여 명의 증언을 묶은 책이다.

소설 '청화 큰스님'을 썼던 작가 남지심은 큰스님을 이렇게 기억한다. "인사를 드리고 큰스님을 보는데, 한 3초 정도 아주 짧은 시간 저를 쳐다보셨어요. 그 눈빛이 바위를 뚫고 지나갈 것 같았어요. 그렇게 부드럽고 강한 눈빛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은 3초 만에 저의 모든 것을 보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인간의 모습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도(道)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청화 스님은 스스로에게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던 분으로 유명하다. 큰스님은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한 뒤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광복 후 생사의 의문을 느껴 출가를 결심했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스님을 은사로 승려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평생 선원과 토굴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60세가 넘어서야 대중 설법을 시작했다.

스님은 석 달 열흘 동안 물만 먹고 정진하기도 했다. 법문을 통해 "참선을 잘 하면 내가 없고 네가 없고 미운 사람 좋은 사람도 없어지며 나날이 좋은 날이고 때때로 좋은 때"라며 참선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고 했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이 세상 저 세상/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은혜를 갚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지난 하반기에 출간된 '청담순호선사 평전'(방남수 임병화·화남)도 눈길을 끈다. 근현대 한국 불교의 기틀을 다진 '큰 산'이었던 선사의 삶과 업적을 기념하는 책이다. 조선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190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출가 후 대처승들의 타락과 일제의 탄압으로 무너진 한국 불교의 맥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님은 원효대사를 통해 계승된 선불교의 명맥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연결시켰다. 책에는 불교정화 과정부터, 북한군을 설법을 통해 물리친 이야기, 대처승들과의 투쟁, 군부정권과의 갈등 등 질곡의 시대 불법을 지켜낸 스님의 삶이 녹아 있다. 스님은 늘 "자리를 바치지 않고, 번뇌를 버리지 않고, 욕정을 끊어버리지 않고, 참회하지 않고, 계를 지키지 않고 어찌 참다움의 진리인 부처의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며 수행을 강조했다.

해인총림 율주와 해인사 주지, 은해사 조실 등을 역임한 일타 큰스님의 책 '자경문-자기를 돌아보는 마음'(효림)도 서점에 나와있다. 스님이 1999년 입적하면서 남긴 "하늘의 밝은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만리의 맑은 바람 옛 거문고 타는구나, 생사열반 이 모두가 오히려 꿈이러니, 산은 높고 바다 넓어 서로 침범하지 않네"는 지금도 중생들의 마음을 울린다.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용성 스님의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대표로 참가한 용성 스님은 현대불교의 기반을 닦은 선지식으로 생활불교의 기풍을 다진 큰스님이다. 불교신문에 연재 중인 내용이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시대의 스승으로 살다가 입적하신 선지식들의 삶과 사상이 요즘 들어 부쩍 화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어둡기 때문이다. 큰스님들의 삶과 사상은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이 시대에 내리치는 고통스러운 '죽비'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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