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넘어 부활한 日本]
부활한 日本 시리즈 취재 후기
"재경관리사 자격증만 따고 공인회계사(CPA)·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은 안 봤는데 면접 때 'CPA나 CFA 1차 붙은 적 있냐'는 질문이 계속 나왔어요. 회계 실무 능력이 부족해 보였나 봐요. 다음 면접 땐 더 조리 있게 말하려고 말하기 훈련을 하고 있어요."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정씨 같은 기자 또래를 만날 때 가슴이 가장 무거웠다. 30군데 떨어진 사람, 50군데 낙방한 사람, 70군데 미끄러진 사람…. 사연을 메모할 때마다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겹쳤다. 다들 이미 넘치게 스펙을 갖추고도 '추가 스펙'을 쌓으려 했다. 하지만 스펙을 보충한다고 해결될 문제 같지 않았다. 정씨는 "학점 3.8은 모자라고 3.9는 돼야 한다"고 속을 태웠지만 토익 945점에 학점 4.2 맞은 김태원(24)씨도 20곳 넘게 지원했다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원서를 낸 회사의 절반은 중소기업인데도 그랬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3개 국어 하는 제자도 취직을 못 해 나도 속이 타는데 부모는 오죽하겠냐"고 했다. 지금 우리 취업난은 의자가 4개뿐인 방에서 수십 명이 의자 뺏기 게임을 하는 격이다. 경제가 살아나 의자 수가 늘지 않는 한 앉는 사람 얼굴만 바뀔 뿐 4명밖에 못 앉긴 마찬가지이다.
김씨는 결국 한국 취업을 포기하고 일본 기업 9곳에 원서를 냈다. 3곳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같은 스펙인데도 불황 터널에 접어드는 한국 기업에서는 20번 퇴짜를 맞은 반면, 일본 기업에서는 면접관이 먼저 일어나 90도로 인사한 뒤 회사 비전을 설명했다.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 되찾은 경제 활력이 양국 취업 준비생들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다.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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