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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11]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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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월남전에 참전했다 두 다리를 잃고 불평과 자기 비하로 삶을 탕진하는 댄 테일러 중위를 보며 인간은 왜 다른 동물에 비해 재생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의아했다. 거미는 다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잃어도 다시 자라난다. 플라나리아, 해삼, 불가사리 등은 몸이 여러 개로 잘려도 각각 완전한 성체로 자란다. 인간은 젖니가 빠지고 간니가 난 후에는 부러지거나 빠진 이가 더 이상 재생되지 않지만, 상어는 계속 새 이가 난다. 기록에 따르면 일생 동안 무려 3만5000개까지 난단다.

인간에게 재생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목욕탕에서 때밀이 수건으로 각질뿐 아니라 멀쩡한 피부까지 벗겨내도 며칠이면 곧바로 재생된다. 가임기 여성이 임신하지 않으면 매달 월경을 겪는데 그때 떨어져 나간 푹신한 자궁 내막 조직도 한 달이면 완벽하게 복원된다. 드물게나마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일부가 잘려나갔다가 회복된 환자들도 있다. 인간의 생체 기관 중 가장 재생 능력이 탁월한 기관은 단연 간이지만 신장 세포의 재생 능력도 상당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분야인 재생생물학 덕택에 심장과 폐는 물론 척추 신경과 방광까지 재생 시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원하지도 않은 재생 능력을 제멋대로 발휘하는 세포를 우리는 암세포라 부른다. 분열을 멈춘 세포에게 갑자기 회춘 기회를 부여하면 자칫 암세포로 돌변할까 두렵다.

어린 시절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꼬리만 손에 남기고 달아난 도마뱀을 기억하는가? 도마뱀의 꼬리는 몇 달이면 원래대로 복구된다. 최근 독일 파충류학자들은 마다가스카르에서 포식자에게 잡히면 비늘을 홀딱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도망가는 진기한 도마뱀붙이를 발견했다. 떨어져 나간 비늘은 물론 몇 주일이면 재생되지만, 너무도 쉽게 발가벗고 달아나는 도마뱀붙이를 보며 연구자들은 우리가 흔히 '바바리맨'이라 부르는 노출증 환자를 보는 것 같아 적이 민망했단다.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이든 못하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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