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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위자료 2500만원으로 끝난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가해 주민과 회사 여전히 '책임 미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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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7일 고 이만수(당시 53세)씨는 자신이 경비원으로 일하던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곳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지 1년쯤 됐을 때였다. 그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한 달 간 병원 생활을 했지만 결국 숨졌다.

젊은 시절 회사원으로 일했던 이씨는 평생 두 아들과 부인을 끔찍이 아낀 가장이었다. 그는 경비원 일을 하면서도 매일 가족과 다정한 카카오톡을 나눴다. 그런 그가 가족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파트 A동에 사는 70대 B(여)씨 때문이었다.

이씨는 2014년 7월 A동에 배치됐다. A동은 B씨가 괴롭히기로 소문나 경비원들이 모두 기피하는 곳이었다. 혼자 사는 B씨는 경비원들을 감시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띄면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이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B씨는 이씨에게 분리수거를 못한다는 이유로 아파트 앞에서 심한 욕설과 질책을 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동료 경비원들은 "B씨가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던지며 '경비, 이거 먹어!'라고 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A동에 배치된지 한 달만에 이씨는 신경정신과에서 중증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이씨는 경비팀장에게 병가를 신청하며 근무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경비팀장은 ”병가는 무급이고, 힘들면 권고사직을 한 뒤 연말에 자리가 생기면 다시 받아주겠다“며 거절했다.

결국 A동 배치 석달 만에 사고가 났다. 이날 아침에도 이씨는 B씨로부터 심한 꾸중과 욕설을 들었다. 이씨는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유족들은 같은해 12월 B씨와 이씨가 소속된 경비 용역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회사가 상급자에게 상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씨를 A동으로 보냈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자살했기 때문에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B씨와 회사가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 과정은 지난했다. 법원은 먼저 B씨와 회사에 조정을 권유했다. 재판에서 법리 다툼을 하기 전에 서로 합의하게 한 것이다. B씨는 조정에 응했지만 회사 측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였으므로 책임이 없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7단독 서봉조 판사는 “회사와 B씨가 함께 유족에게 위자료 2500만원을 지급해야한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의 스트레스를 알면서도 방치한 것은 사용자의 보호의무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씨의 잘못도 도외시할 수 없다”며 책임을 제한했다.

가장을 떠나보낸 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유족 보상금을 매달 연금 형태로 받고 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이씨의 부인을 포함해 가족들 모두가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사실 유족들도 위자료 액수엔 큰 관심이 없었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에 대해 가해자와 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은 건 B씨와 회사 측이 위자료 액수의 분배에 합의하는 과정이다. 현재 B씨는 “내 명의 재산이 없다”며 회사 측에 배상을 미루고 있다. B씨가 살던 아파트는 자식 명의다. 아랫층에 딸이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전가할 순 없다. 회사 측은 “절반인 1250만원씩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B씨를 대신해 전액 배상할 경우 구상권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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