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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가습기 살균제 거슬러 오르면 성수대교ㆍ삼풍 참사와 맞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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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균' 영화화 소재원 작가 인터뷰

무능한 정부ㆍ이윤만 좇는 기업

망각이 주는 교훈은 비극의 재발

아내 임신하자 가습기부터 구입

피해자들 노력 덕에 가족은 무사

영화 제작에 롯데그룹이 나서

상영 늘리고 수익금 환원했으면
한국일보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 위원이기도 한 소재원 작가는 24일 “국회는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하고, 중단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노력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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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야기가 스크린에 담길 예정이다. 빼앗긴 숨들의 절규가 가장 대중적인 문화매체로 기록되면, 우리는 생활화학제품의 위험성과 정부의 허술한 법 체계, 기업의 탐욕을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에는 올해 5월 영화의 원작이 될 소설 ‘균’을 출간한 소재원(33) 작가가 있다. 소 작가는 8월 개봉한 영화 ‘터널’을 비롯해 ‘소원(2013)’ ‘비스티 보이즈(2008)’ 등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4일 오후 서울 구로동에서 그를 만났다.

“창작이 아닌 기록과도 같은 책을 쓰고 싶었어요.” 소 작가는 지난해 6월부터 가습기 피해자와 환경단체 활동가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취재에 공을 들였다. 작가라기보다 취재기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소설은 가습기 살균제로 생후 90일된 딸 민지와 아내를 잃은 주인공이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는 내용이다. 현실 사례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소 작가는 “사실에 가까운 허구(페이크다큐)를 통해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진실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폭로했다”고 설명했다.

“흥행을 포기한 탓에 1,000부도 안 팔린 소설”을 굳이 집필한 이유는 올해 2월 태어난 그의 아들 ‘소명’ 때문이다. 소 작가는 “지난해 5월 아내가 임신하자 가장 먼저 구입한 육아용품이 가습기였다. 이후 자연스레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접했고, 피해자들의 희생과 재발방지 노력 덕분에 내 아들과 아내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 작가는 아들 100일 잔치를 여는 대신, 비용으로 썼을 1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책 인세도 거부했다. 소 작가에게 돌아갈 판매 수익은 모두 피해 구제에 쓰인다.

아들 이름처럼 그의 소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 작가는 소설의 영화화 작업에 매진 중이다. 현재 각색된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제작사 및 메가폰을 잡을 감독도 정해졌다. 이르면 내년 봄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제작비용으로 30억~40억원이 예상되는데, 투자ㆍ배급사를 찾고 있다. 소 작가는 “영화 제작에 롯데그룹이 나서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2006년부터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22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쇼핑은 주요 가해기업 중 하나다. 소 작가는 “롯데가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소유하고 있는 상영관을 통해 영화를 널리 알리고, 수익금을 피해자들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시점도 고민이 깊다.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는 영화가 얼마나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 벨’이 외압 논란 속에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막 내린 경험을 한국 사회는 기억하고 있다. 소 작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제작진은 정권 교체가 이뤄진 내후년에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소설의 부제는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지구상 유례 없는 참사”라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실은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 작가는 “정부의 무능, 기업의 이윤 추구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성수대교와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도 최순실 게이트 등 다른 현안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망각이 주는 교훈은 같은 비극의 재발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소설은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주인공의 다짐으로 끝난다. “달라지는 건 없는데 나는 매일 같이 이곳에 나와요. (중략)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지랑 민지 엄마는 잊혀요. 그래서 해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해요.”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한국일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소설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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