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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월드 톡톡] 파리 곳곳에 난민 텐트촌… 경찰·철거반과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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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정글 난민촌 폐쇄하자 파리로 몰려드는 '풍선 효과'

철거 피해 골목으로 숨었다가 경찰 지나가면 다시 텐트 세워

주민들, 악취·치안불안 호소… 난민들은 "살길 마련해달라"

지난 4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동북부 스탈린그라드역 인근에 있는 플랑드르가(街). 가로수를 따라 텐트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텐트 행렬을 따라 200m가량을 걷는 내내 누더기 같은 이불과 버려진 신발 등이 발에 챘고, 악취가 진동했다.

텐트촌 주인은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고 있는 프랑스 북부 '칼레'에서 쫓겨온 난민들이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달 하순 칼레에 있던 난민촌을 철거하자 갈 곳 없는 난민들이 파리로 몰려들어 변두리에 제2 난민촌을 만든 것이다. 일종의 '풍선 효과'인 셈이다.

조선일보

지난 4일(현지 시각) 오전 프랑스 파리시 당국이 파리 19구 스탈린그라드역 근처 플랑드르가(街)에 최근 들어선 난민 텐트를 철거하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프랑스 서북부 항구도시인 칼레의 난민촌이 본격적으로 철거되자, 파리시에는 하루 100여 명씩 난민이 유입되고 있다. 도버해협과 맞닿아 있는 칼레는 영국으로 이주하려는 난민 1만여 명이 몰려 있던 곳이다. /최연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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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난민들은 텐트촌을 나와 플랑드르가 인근 골목에 숨어 있었다. 파리시(市) 경찰과 철거반 수백 명이 들이닥친 것이다. 철거반은 주머니칼로 가로수와 연결된 텐트 고정용 밧줄을 끊었다. 뒤에는 잔해를 한꺼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불도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단속에도 난민 텐트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난민들은 경찰이 쓸고 지나간 곳에 다시 텐트를 세우거나, 적발될 위험이 적은 고속도로 갓길 등지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역 인근을 정리하면 다른 골목으로 텐트촌을 옮기는 식으로 철거반과 숨바꼭질도 계속하고 있다.

스탈린그라드역 인근은 무슬림 인구가 밀집해 있는 곳이어서 시리아·수단·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온 난민들이 선호하고 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주민이 많아 경찰의 눈을 피하기가 좋은 것이다.

난민들은 텐트 철거에 거세게 반발했다. 아프간 출신 30대 난민 우마르씨는 "경찰이 유일한 재산인 텐트를 찢어버리면 우리는 새집을 얻기 위해 시내 곳곳에서 구걸하거나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호 단체에서 나왔다는 40대 여성 레이나씨도 "고작 400~500명을 수용하는 파리시 난민 임시 거처는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파리 시민들은 악취와 치안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난민들이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용변을 보는 바람에 거리는 코를 막지 않고선 지나치기 어려운 수준이다. 파리 18구에 사는 레퓌(여·64)씨는 "여기가 프랑스인지 전쟁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서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파리시 전체가 난민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최연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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