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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한국은 미래의 일본? 인구문제 대응에 속도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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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199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 '우나기'를 최근 우연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외도하는 아내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뒤 수감 생활을 하고 나와 시골에서 이발소를 차리고 새 삶을 사는 남자(야쿠쇼 고지 분)의 이야기다.

아연했던 것은 당시 그 시골마을 허름한 이발소의 이발료가 2천엔이었다는 점이다. 도쿄에서 생활하는 필자가 현재 이발할 때 내는 돈은 1천500엔(약 1만3천500원)이다. 27년간 별 변화가 없는 이발료는 아마도 디플레이션(장기적인 물가하락)에 빠져 '잃어버린 30년'을 보낸 일본 경제의 한 단면일 것이다. 단순화하면 일본 경제는 1990년 초 버블붕괴 후 물가만이 아니고 회사원 월급도 게걸음을 했고 일본 경제의 성장률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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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나기'의 주인공을 맡았던 일본 배우 야쿠쇼 고지
[서울=연합뉴스 자료사진] 박동주 기자 = 올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 배우 야쿠쇼 고지(왼쪽)의 모습. 2024.7.21 pdj6635@yna.co.kr


그 결과는 최근 양국의 각종 경제 통계에 그대로 반영돼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6천132달러, 일본은 3만2천859달러로 각각 추정됐다. IMF 추정으로는 2023년에도 이미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을 앞섰다. 한국은행이 유엔 통계 등을 이용해 비교한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한국이 3만6천194달러로, 일본(3만5천793달러)을 추월했다. 한국의 소득 수준이 일본을 넘어선 것은 약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상상하기도 힘든 기적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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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탈리아·일본·대만 1인당 GNI 비교(2023년)
[한국은행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추월해서는 안 될 분야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로 상징되는 인구 분야 추세가 그렇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지난 12일 발표한 장래 가구수 추계에 따르면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노인 가구'가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45.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20년에는 37.6%였다. 한국 통계청의 지난 9월 추계를 보면 한국은 '노인 가구' 비율이 2022년 24.1%에서 2050년 49.9%를 거쳐 2052년 50.6%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양국 통계 당국의 추정이 맞는다면 한국의 노인 가구 비율이 일본을 추월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7.2%였으나 2018년 14.4%로 높아졌고 2025년에는 20.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37년이 걸렸다면 한국은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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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전국 가구 수 전망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minfo@yna.co.kr X(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이미 저출산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한참 앞서있다. 언젠가부터 출산율을 다루는 일본 신문 기사에서는 "한국은 미래의 일본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국민적인 위기의식을 호소하려는 것이겠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롱으로도 들린다. 세계 꼴찌로 불리는 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지난해 0.72명으로 일본(1.2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니 항변하기는 어렵다.

위기 의식에 화답하듯 일본 정부나 지자체도 출산율 하락 저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0세부터 고교생까지 아동 수당 지급, 육아 휴직 제도 개선 등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실행에 옮겼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종합 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2030년까지가 추세를 반전시킬 마지막 기회"라며 결의를 보였다. 도쿄도는 젊은 층이 안심하고 결혼 상대방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데이팅 앱'을 자체 개발해 올해 9월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책의 실효성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저출산 추세를 억제하기 위한 일본 당국의 의지는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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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저출산 대책 기자회견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
(도쿄 교도=연합뉴스) 작년 6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저출산 대책을 직접 발표하는 모습. 2023.06.13. [재배포 및 DB화 금지]


이에 비해 한국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얼마나 속도감 있게 추진되는지는 회의적이다. 현 정부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이 지난 올해 6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핵심 방안인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교육·의료·고용·주거·복지 등 다방면에 걸친 과제를 종합적으로 힘있게 추진할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여당이 지난 7월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는 했지만, 야당 협력을 낙관하기에는 여야의 반목이 심한 게 현 정치 상황이다.

인구 추계는 합리적인 추정일 뿐이다. 출산율, 기대수명 등 가정에 기초한 미래의 인구 예상도다. 각종 변수를 합리적인 시나리오에 맞춰 가정했지만 사회 구조나 구성원의 행태 변화에 따라 실제 결과는 다를 수 있고, 최소한 출산율 저하나 고령화 속도는 늦출 수 있다.

지난 30여년 사이에 양국의 소득 수준에서 기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30년 뒤 인구문제에서도 기적을 이루려면 대책 실행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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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성남=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2024.6.1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hihong@yna.co.kr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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