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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뉴스AS] 일베 사무실이 털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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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AS]

조선일보 “이건희 사망설 유포 혐의 일베 압수수색” 보도

경찰 “그거 오보…팩스로 영장보내 가입자 정보 받았을뿐”



한겨레

수많은 기자들이 일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에 나섰지만, 운영진이 누군지는커녕 사무실 위치조차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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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망설을 유포한 혐의로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디시인사이드 두 곳을 압수수색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이 회장의 사망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퍼지기 두 달쯤 전 디시인사이드의 게시판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 먼저 올라왔다. 또 지난달 29일에도 유사한 내용이 일베의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지난 5일 두 사이트의 운영 사무실과 서버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지난 14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중 일부 내용입니다. 경찰이 일베 등의 운영 사무실과 서버를 압수수색했다는 뉴스는 주요 검색어로 등극하며, 이날 하루 종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관련 기사에는 ‘그동안 온갖 명예훼손과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악성 게시물로 물의를 빚은 일베가 드디어 털리는 거냐’ ‘이건희 (회장) 건드리니까 그간 꿈적도 안 하던 경찰이 나섰구나’ 등의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가운데, 한 댓글을 보다가 멈칫했습니다.

“일베 어딧는데 압수수색하냐 ㅋㅋㅋ”

네, 그렇습니다. 일베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비롯해, 일베가 극우·보수 세력의 온라인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한 이후 일베의 ‘정체’는 기자들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일베를 찾아나섰지만, 운영진이 누군지는커녕 사무실 위치조차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일베 상표권을 양도받은 주식회사 유비에이치(UBH)는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에 본점을 두고 있다고 법인등기부 등본에 밝히고 있지만, 지난해 5월 고나무 기자가 이 7층짜리 건물을 찾아가본 결과, 입주한 18개의 사무실 중 어디에서도 유비에이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베일의 ‘기업 일베’, 너는 도대체 누구냐) 경찰이 일베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에 ‘드디어 일베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것인가’흥분된 마음으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무실과 서버를 압수수색했다는 기사, 그거 모두 오보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단칼에 기대를 꺾어버렸습니다. “일베 사무실이나 서버업체를 직접 찾아간 게 아니라, 팩스로 영장을 제시해 가입자 정보를 요청하고 결과를 받았을 뿐”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얘기였습니다. 그는 “(일베에 올라온 게시글에 대한) 고소나 진정이 들어왔을 때 이런 방식으로 일베 가입자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을 통해 일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앗, 그런데 인터넷 사이트의 가입자 정보를 받기 위해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다네요. 그간 경찰 등 수사기관은 가입자 정보 같은 개인정보를 얻기 위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영장을 받기보다는 일베 같은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자료 제공 요청서’ 하나를 달랑 보내는 방식을 써왔거든요.

“아이고, 이게 다 한겨레 때문입니다.”

왜 (경찰 입장에선) 쉬운 방법을 두고 영장을 받은 거냐고 묻자, 이런 하소연이 돌아왔습니다. <한겨레>가 지난 3월부터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 문제를 지적하고, 소송까지 나서는 바람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예민한 분위기라 최근에는 많은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주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아참, 이왕 하는 것 경찰에 한 가지 더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팩스 영장’은 쓰지 말자는 겁니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에 대한 재판에서 법원이 편의주의적인 ‘팩스영장’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등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팩스를 통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데 대해 여러 차례 제동을 걸기도 했으니까요.

어쨌든 이번에도 일베의 실체 찾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베 운영진이나 사무실의 위치를 알고있는 독자들의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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