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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부채위기 3년..지금 유럽은 ④]"독일은 유로존의 구세주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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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나주석 기자]"독일의 경제상황은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가장 좋다. 지난해에도 경제가 계속 성장했고 이전 해에도 성장세를 유지했다. 2008년 위기 당시 노동자와 기업이 고통을 분담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경제가 다시 좋아져 월급이 오르고 분위기가 나아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유럽ㆍ글로벌 경기 모두 상황이 안 좋다보니 경제가 다시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에서 30년 간 관광 가이드를 해온 이윤구씨의 말이다.

이씨의 말마따나 유럽에 불어 닥친 부채위기의 광풍 속에서도 그 동안 독일 경제는 안정된 가운데 승승장구했다. 제조업에서 경쟁력이 강한 독일은 2000년대 초반 고통스러운 노동시장 개혁 과정을 거쳤다. 고통분담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체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대폭 향상돼 다른 유럽 국가가 따라올 수 없는 산업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더욱이 부채위기의 영향으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자 독일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까지 갖게 됐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해결의 가닥을 보이지 않고 수렁 속으로 더 빠져들자 유럽은 독일에 더 큰 책임을 요구했다. 유럽이 풍전등화인데 독일만 무사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요구에도 독일은 더 큰 책임을 회피했다. 지금 유럽에 필요한 게 강도 높은 긴축정책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28~29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스페인ㆍ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의 일부 요구를 들어주자 '메르켈의 패배', '독일의 패배' 운운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내 진정한 승자는 독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상회의 합의안과 관련해 독일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로존 위기를 안정시키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고공 비행했다. 정상회의 합의안이 그대로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각론에서 추가 협의가 필요한데다 핀란드ㆍ네덜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로존 문제에서 소극적이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일로서는 흥청망청 써댄 이웃 나라들의 빚을 자국이 부담한다는 게 마땅치 않은 것이다. 유럽 정상회의에 앞서 '내일 유로존 잔류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이라는 제하의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의 41%가 옛 화폐인 마르크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유로존 잔류를 지지한다'는 의견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 공무원도 "'같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남유럽 국가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여론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을 위해서는 유로존 존립이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도와주기만 해야 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늪 속으로 빠져드는 독일=독일이 유로존 위기를 수수방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 동안 유로존 위기에도 독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성장 덕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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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소재 경제연구소인 IFO에서 발표하는 기업 신뢰도는 2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105.3을 기록했다. 유로존 부채위기에서 독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독일 *데카방크의 안드레아 슐레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의 산업생산이 증가했지만 향후 몇 달 동안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유로존 경기침체 징후가 강한데다 세계 경제 자체가 어려워 경기회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독일 국민이 유럽을 돕는 게 궁극적으로 자국을 돕는 일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동안 독일은 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만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메르켈은 유럽의 구원투수?=메르켈 총리는 다른 나라들의 반대에도 독일 국익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국민들로부터 지지 받았다. 이런 그가 독일 국민의 일반 정서를 배신할 수 있을까. 독일인들은 구제금융을 남유럽에 대한 '퍼주기'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판에 과연 누가 불확실한 미래의 청사진만 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독일 국민이 유로존을 살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려면 그만큼 위험이 피부에 와닿아야 한다. 독일 국민이 실감할 때쯤이면 때는 이미 늦다.

더욱이 현 독일 연합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교사회당(CDU)은 연정이 무너질 수 있다면서 유로존 문제에 대해 한층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대표는 메르켈 총리가 재정개혁에 대해 엄격한 요구 조건 없이 유로존의 문제 국가들을 구제만 한다면 연정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르켈 총리로서는 대승적인 양보가 힘든 정치적 구조인 셈이다. 더욱이 메르켈 총리는 15개월 뒤 총선을 치러야 하는 처지다.

미국의 소규모 신용평가업체 이건존스의 창업자인 숀 이건이 지적했듯 독일에서 나설 경우 유로존 부채위기가 진정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는 "흔히들 EU가 안고 있는 문제를 독일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이런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인지 재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부채위기와 각국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독일의 대승적인 결정만으로 사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일 듯싶다. 부채위기가 이미 심화한데다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남유럽 국가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추가 성장동력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독일이 과연 유럽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신범수 기자 answer@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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