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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깜깜이 구조조정’ 자율협약 폐해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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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지원 비공개’ STX조선 법정관리로 국민에 부담 떠넘겨

“관치금융 유발” 지적…워크아웃처럼 공개해 투명성 제고를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 3년간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도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서 ‘자율협약’ 구조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자율협약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구조조정 계획과 진행상황에 대한 정보를 채권단과 기업, 금융당국만 공유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제대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지’ 알 길이 없다. 구조조정 지원자금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되는 만큼 자율협약 구조조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이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자율협약은 대상 기업 목록은 물론 구조조정 계획·진행상황·자금 지원 등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13년부터 자율협약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STX조선도 채권단이 3년간 4조5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20여차례에 걸쳐 지원한 사실만 공개돼 있을 뿐이다. 이 중 약 2조원은 산업은행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시중은행들이 얼마를 투입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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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이 막대한 지원금을 주로 빚 갚는 데 쓰고 기업의 구조 개선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는 ‘설’이 파다하지만 이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STX조선 노조가 “채권단이 지원금 중 3조7000억원을 채무, 채권, 이자 상환 등 투자금 회수에 주로 썼다”고 지적했지만 산업은행은 “사실과 다르다. 지원금은 대부분 배 짓는 데 활용됐다”면서도 신규 자금 집행 내용을 묻자 “이제 와서 구체적으로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피해갔다. ‘비공개’로 일관하니 왜 구조조정이 실패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모든 구조조정 방식이 ‘자율협약’처럼 ‘깜깜이’는 아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적용을 받는 워크아웃은 채권금융기관이 주도한다는 점에서는 자율협약과 같지만 올해부터는 주기적으로 구조조정 경과와 성과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기촉법은 주채권은행이 기업개선계획 진행상황을 매년 한 차례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주주와 노조는 주채권은행에 구조조정 이행 과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워크아웃 시작 후 3년이 지나면 결과를 평가해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기촉법 개정에 참여했던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조조정의 이해당사자들은 공평하게 정보를 파악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정보공개 조항이 포함된 것”이라며 “불합리한 관치를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율협약은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정보공개 의무도 지지 않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런 지적에 “절차 개시를 위한 채권단 동의율(자율협약은 채권단 100%, 워크아웃은 75%)만 다를 뿐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은 같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보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기촉법 적용을 받는 워크아웃만 정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자율협약이 사실상 대기업 봐주기용 구조조정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산업은행이 채권을 보유한 99개 구조조정 기업(지난해 8월20일 기준)을 분석한 결과 자율협약 적용 기업 수는 13개였지만 이들 기업의 자산규모가 전체 구조조정 기업(99개)의 절반에 달했다. 주로 대기업에 자율협약이 적용된 셈이다. 또 구조조정 개시 직전 3년간 재무상태를 살펴본 결과 워크아웃이 적용된 기업과 자율협약이 적용된 기업의 부실 수준은 별 차이가 없었다. 자율협약은 자율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이어서 부실이 상대적으로 덜한 경우 선제적으로 활용된다는 정부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자율협약이 오히려 대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불투명한 관치금융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자율협약 방식에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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