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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왜 하이닉스 같은 '대박 구조조정 기업'이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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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기업 채무구조, 확실한 채무조정 어려워...'법정관리와 워크아웃 결합' 등 제도개선 추진 ]

2001년 10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2005년 7월 이를 조기졸업하고 2012년 2월 SK그룹에 매각된 하이닉스반도체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사례로 꼽힌다. 비슷한 시기에 워크아웃에 돌입해 2011년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돌아온 현대건설 역시 성공한 구조조정으로 평가받는다.

새 주인을 찾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들 기업은 채권단에게도 적지 않은 이익을 안겼다. 물론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의 부실이 외환은행을 론스타에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지만 은행들에게 출자전환을 통해 보유한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주식은 비상금 같은 존재였다. 은행들은 실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곶감 빼먹듯 이 주식들을 팔아 이익을 보충했다. "은행장들이 임기말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일부러 팔지 않고 남겨 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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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00%였던 워크아웃 졸업 비율, 지금은 24.3%=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효자 구조조정 기업이 사라졌다. 그동안에도 많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려 채권단의 품에 들어갔음에도 성공한 구조조정이란 평을 듣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데이터에서도 증명된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도 줄어들었고 성공한 기업의 비중도 감소했다. 금융연구원 자료('우리나라 워크아웃 평가 및 시사점, 구정한,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구조조정 수요는 두 차례 급증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이었던 2009년이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실시하는 기업신용위험평가 결과 C등급을 받은 기업은 '워크아웃' 대상이다. 1998년 평가에서 77개, 2009년 평가에서 70개가 C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1998년에는 77개가 모두 워크아웃에 들어간 반면 2009년에는 61개만이 신청했다. 87.1%만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간 셈이다. 2009년 이후에는 더 낮아진다. 2011년엔 C등급 15개사 중 11개(73.3%), 2012년엔 22개사 중 12개(54.6%), 2013년엔 30개사 중 14개(46.7%), 2014년엔 15개사 중 5개(33.3%)만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졸업한 비율도 떨어진다. 2000년 100%에 달했던 워크아웃 졸업비율은 10년 후인 2010년 24.3%로 낮아졌다. "***기업, 워크아웃 조기졸업"이란 기사가 사라진 이유다.

◇"은행만으론 구조조정이 안된다"= '효자 구조조정 기업'의 씨가 마른 이유는 뭘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탓도 있지만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기업의 채무구조가 달라졌다'는 점을 우선 꼽는다. 기업의 빚이 대부분 은행에 있던 시절이었던 외환위기 직후와 달리 지금은 기업에 돈을 빌려준 곳이 다양해졌다.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구조의 자금조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채권은행끼리 모여 채무탕감, 출자전환, 이자율 인하 및 만기연장 등의 채무조정을 해주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만 봐도 협약채권(은행)과 비협약채권(사채권자 등)의 비율이 3대7 정도다. 현대상선 채권은행들이 용선료, 사채권자의 채무조정이 없으면 법정관리로 처리하겠다고 버티는 이유도 은행이 채무조정을 해줘봐야 나머지 빚이 너무 커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규자금 지원도 안해주는 이유는 신규자금이 나머지 빚쟁이들의 빚을 갚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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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채무구조는 채권자간 이해관계 조정을 어렵게 해 충분한 규모의 채무조정도 힘들게 한다. 구조조정에서 핵심은 엄정한 평가를 통해 죽일 기업과 살릴 기업을 정하고 살릴 기업에는 충분한 규모의 채무조정과 자금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살리기로 해놓고 충분한 채무조정과 자금지원이 안되면 그만큼 회생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졸업이 늦어지고 또다시 채권단에 손을 벌리는 기업들이 이어지는 이유다. 쌍용건설과 경남기업은 두차례나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두일 유암코 이사는 현재 워크아웃 제도에 대해 "자금 조달구조의 다양화로 채권자와 이해관계가 복잡해져 신규자금 지원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중견이나 대기업에는 일부 국책은행 중심으로 일회성 지원만 이뤄지고 중소기업에는 자금 지원은 없이 이자율 감면, 원금상환 유예 등의 채무조정 정도만 해주고 있다"는 것.

◇경남기업 사태가 불러온 '금융당국의 위축'= 비협약채권은 고사하고 은행들간 이견조율도 더 힘들어졌다. 과거처럼 금융당국이 은행의 팔을 비틀어 지원을 요구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지(?)에서 은행간 이견조율을 맡아 왔던 금융당국은 경남기업 사태로 인해 운신의 폭이 축소됐다. 경남기업 사태를 거치며 감사원은 금융감독원이 법적 근거 없이 구조조정 업무에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전직 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부당한 압력 행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감사원과 검찰의 결론에 대해 "구조조정 업무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금감원 실무자들은 다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책은행으로 구조조정 부담이 쏠리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에겐 사망선고가 다름없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통해 살아난 기업들이 오히려 주목받기도 한다. 법정관리는 신규자금 지원이 제한되고 기업에 대한 시장신인도가 추락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법원이 모든 채권자의 채무를 한꺼번에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시원하게 한방에 빚을 털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팬오션(옛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거쳐 3년여만에 새 주인을 만났고 두번의 워크아웃이 실패하면서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쌍용건설도 이미 새 주인을 찾았다.

◇구조조정 프로그램 개선 움직임=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올해 개정을 통해 적용 대상 기업을 신용공여액 30억원 이상으로(이전엔 500억원 이상이었다) 확대했고 채권단의 범위는 모든 금융채권자로 넓어졌다.

구조조정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도 시작됐다.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회사였던 '유암코'가 구조조정 업무에 뛰어든 게 대표적이다. 회생 가능한 구조조정 기업의 채권을 모두 사들여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시키는게 유암코식 구조조정이다. 다만 아직은 신용공여액 1000억원 정도의 중소, 중견기업 정도만 가능하다.

이와 함께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의 장점을 결합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진행 중이다.

구조조정 추진시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 만이 아니라 사업구조조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석기 금융연구원 박사는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상태 변화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사업성을 면밀히 분석해 경쟁력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새로운 사업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구조조정의 역할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형 기자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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