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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깜깜이 구조조정]청사진 없는 ‘겉핥기 구조조정’…2008년과 ‘닮은꼴’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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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방향 설정 ‘큰 그림’ 없이 개별 기업 재무개선에만 집중

감시 어려운 ‘유사 공적자금’으로 관료 주도 집행 되풀이 우려

정부가 추진 중인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수십조원을 쏟아붓고도 위기를 재발시킨 2008~2009년 구조조정과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 이후 한국 경제의 방향 설정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깜깜이 구조조정’, 부실기업 몇 곳만 처리하고 지나가는 ‘겉핥기 구조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당시 이명박 정부는 10월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 발표를 시작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이어 건설사 토지 매입, 자금 지원을 뼈대로 하는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건설사 구조조정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금을 대출해준 금융사, 즉 ‘대주단’과 건설사의 협약(대주단 협약)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 한진해운, 현대상선에 적용되고 있는 채권단 자율협약과 유사한 것으로 법적 근거가 없어 사후 감시·평가가 어렵다.

박선숙 국민의당 당선자는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협약’으로 구조조정을 받았는지는 정부만 알고 있다”면서 “전형적인 ‘깜깜이’ 행태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실경영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은 채 진행된 만큼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지금도 정부가 채권은행 부실을 막아주면 채권은행은 기업 채무를 탕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총수가 경영실패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깜깜이 구조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가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도 우회적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신용 보강으로 발행되는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채권시장안정펀드’, 은행 후순위채 등을 매입해 자본을 확충해주는 ‘은행자본확충펀드’, 금융기관 부실채권 및 기업의 구조조정 대상 자산 매입을 위한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해 구조조정 재원으로 썼다. 국회와 감사원의 감시가 어려운 유사공적자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뒤늦게 구조조정기금(실제 조성액 6조2000억원)은 공적자금법의 관리를 받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감시되지 않는 재원이 더 규모가 컸다. 유사공적자금 이외에도 금융공기업을 통한 지원액수가 77조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올해 조선·해운 구조조정도 정부가 재원 마련 논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8~2009년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조선·해운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해 한국은행에 돈을 찍어내게 하려다 한은의 반발로 ‘대출’을 받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정(국가예산)을 사용하거나 공적자금으로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할 경우 국회에서 책임론이 불거지기 때문에 피해가려는 것이다.

산업 경쟁력 측면의 접근이 없다는 점도 유사하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석기 박사의 분석을 보면 사업 통폐합이나 신규 사업 추진 등 사업재편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성공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성공률(32.4%)은 외환위기 이후(51.8%)보다 훨씬 낮았다. 업계 안팎에서는 “산업적 시각에서 최적의 대안과 지향점을 설정해야 한다”(보스턴컨설팅그룹 오승욱 파트너)거나 “연관산업에 미칠 영향 등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산업연구원 이항구 선임연구위원)는 지적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국회에서 구조조정의 청사진과 필요한 자금 규모를 국민적 합의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국회 논의를 통해 한국의 경제상황 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구조조정 자금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윤경·고희진 기자 kyung@kyun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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