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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구조조정 앞두고 공 차서야…" 기재부, 체육대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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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매년 봄에 열리는 기획재정부 체육대회는 대단한 행사입니다. 특히 국실(局室) 대항전을 펼치는 축구는 몇 달 전부터 준비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새벽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한 맹훈련은 기본이죠. 간부들은 미리 인사철부터 축구 잘하는 사무관을 확보하려고 열을 올립니다. 다른 부처에 파견 근무 중인 ‘선수’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천안의 한 연수원을 빌려 토요일에 전 직원이 참가해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런데 기재부가 올봄에는 체육대회를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유가 여럿이라고 합니다. 우선 조선·해운 업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할 국면인데 공무원들이 체육 행사에 열 올리는 게 합당한 처신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기재부의 국장급 간부는 “직장 잃는 사람들이 나올 거라고 예고하고 공을 차면 국민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며 “국회에 경제 활성화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애쓰는 도중에 축구 시합 한다는 것도 앞뒤가 안 맞다”고 하더군요.

북핵(北核) 문제로 인한 남북한 긴장 고조도 발목을 잡은 요소입니다. 북한이 연초부터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는 등 엄중한 분위기인 만큼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한 고위 간부는 “비상 상황인 외교·안보 부처들과 공조하는 모양새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기재부가 ‘후방’인 세종시에 있고, 경제 부처라는 이유로 외교·안보 변수에 둔감해지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달인 5월에 체육대회를 치르는 것에 불만이 있는 직원들의 의사도 반영했다고 합니다. 체육대회를 갖느니 가족들과 주말에 나들이하게 만들어서 내수 활성화에 기여하게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는 계산도 했다고 합니다. 기재부가 주요 연례행사로 치러온 체육대회를 포기할 정도로 경제와 안보를 걱정하고 있다니, 한편 안심이 되면서도 안쓰럽기도 합니다. 하루빨리 경제가 살아나 내년엔 기재부가 체육대회를 성대히 치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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