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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한-미 너무 다른 ‘구조조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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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2008년 연준의장·장관

수시로 의회찾아 설득

한국, 정치권을 걸림돌 치부

“간섭으로 신속성 확보 힘들어”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한국은행 등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 마련에 나섰다. 부실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많게는 십수조원에 이를 그 돈이 결국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손실을 키운 주체는 경영진과 대주주, 국책은행 등 정부이나 그 부담은 사회가 떠안는 꼴이다. 이른바 ‘비용의 사회화’가 이뤄지는 상황임에도 그 절박성이나 불가피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기재부나 금융위원회 등은 정치권을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방해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이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하면 지역구 눈치를 봐야 하는 의원들의 간섭이 심해지고, 관료들에 대한 책임 추궁 등으로 신속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이나 대주주한테 고통을 분담시키려는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지 않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대주주는 기업 부실과 관련해 사재를 출연하거나 기업을 포기하는 각서 제출 등의 방법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경영 책임을 직접 추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태도는 미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취했던 모습과 다르다. 당시 미국 정부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도입해 7000억달러(약 809조원)에 이르는 구제금융 기금을 조성하면서 정치권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당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여야 의원들을 수시로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에서 의원들과 만남은 물론 전화통화, 전자우편 교환 등을 통해 설득에 나섰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아울러 미국 의회는 2008년 11월 청문회를 열어 자금 지원을 요청한 지엠(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의 경영진을 출석시켜 책임을 추궁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는 이들의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과 고액 연봉 등을 따져 물었다. 당시 릭 왜고너 지엠 회장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와 “빈곤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 중절모와 턱시도를 입고 왔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듬해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지엠에 압력을 넣어 왜고너 회장을 사임시키기까지 했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상적인 방법으로 회사를 지속시키기 어렵다. 구조조정 없이 자금만 지원한다면 환자를 치료하지는 못하고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가도록 하게 될 것이다”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촉구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기업 부실의 원인과 책임이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고 구조조정의 방향과 편익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음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편법으로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밝혀 구조조정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TARP(Troubled Asset Relief Plan)이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만든 경제안정화법(EESA·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의 주요 내용으로, 7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자동차업체에게도 자금 지원이 이뤄졌다. 금융기관 붕괴를 막았다는 평가와 국민 부담을 이용해 사기업을 지원했다는 비판이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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