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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기업 구조조정]부실기업에 ‘낙하산’ 보내고 추가대출…산은, 구조조정 자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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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102명…떠안은 기업만 377곳 몸집만 ‘비대’

한계기업에 ‘연명’자금만 대주고 구조조정 사례 드물어

부실채권 비율 일반은행의 5배…금융당국 감독도 부실

경향신문

산업은행이 현안으로 떠오른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높다. 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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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을 산업은행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해운·조선 구조조정의 주체가 산업은행이 돼야 한다며 밝힌 말이다. 하지만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의 영향으로 구조조정은커녕 부실을 키워온 사례가 적지 않은 ‘흑역사’를 돌이켜보면 산은은 구조조정을 할 능력도, 도덕성도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은행의 ‘적폐’를 근본부터 바꾸지 않고는 또다시 ‘밑 빠진 독’에 국민 혈세를 쏟아붓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낙하산’이 구조조정 방해

산은의 한 지역본부장은 2013년 2월 산은 투자기업인 강남순환도로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다음달 20일 산은은 이 회사에 2억원을 투자했고, 이틀 만인 22일 38억원을 대출해줬다. 산은 자회사인 쌍용양회공업은 산은 경인지역본부장을 지낸 박모씨가 지난해 4월 이 회사 부사장으로 옮긴 직후 1000억원의 대출 연장을 받았다. 산은 재무부문장으로 있던 김모씨는 지난해 3월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이즈음 대우조선해양은 산은으로부터 5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산은은 부실기업에 대한 채권을 기업 지분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자회사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다. 산은이 지분 5% 이상을 투자한 회사는 377곳이다. 하지만 이 자회사들에 산은 퇴직 임직원과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갔고, 이들이 곳곳에 포진하면서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금융위기가 일었던 2008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산은 퇴직자들이 자회사나 대출 업체로 옮겨간 ‘낙하산’은 102명에 달한다. ‘낙하산’ 인사를 전후해 이들이 내려간 기업들 중 상당수가 산은으로부터 추가 대출이나 대출 연장을 받았다.

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2년간 5조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분식회계 의혹으로 전 경영진이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대주주인 산은 역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2008년부터 대우조선의 재무최고책임자는 산은의 부행장 출신들이 맡고 있었지만 부실이 커지는 상황을 방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이 2008년 이후 임명한 사외이사 18명 가운데 12명이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추격으로 조선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그러나 한계기업(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에 자금만 대줬을 뿐 이렇다 할 구조조정 사례는 없다. 2014년 여름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통합·합병 방안이 거론됐다. 유휴인력과 잉여설비를 축소해 원가를 절감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하자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성동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통합·합병에 따른 손실 부담 조정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논의가 무산됐다. 조선업 업황이 악화되자 수은은 작년 성동조선에 3000억원의 ‘연명’자금을 지원했다.

대우조선에 대한 산은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4조1000억원, 수은은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산은의 부실채권(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사상 최대인 5.68%로, 일반은행 평균치(1.14%)의 5배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9%에서 4.5%포인트 가까이 치솟으며 부실채권 규모가 7조3000억원에 이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8년 이후 워크아웃이 개시된 상장기업 39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국책은행이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서는 시점은 일반은행보다 2.5년 가까이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며 부실기업을 연명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책은행 흔드는 ‘관치’

산은의 도덕적 해이와 부실은 ‘관치’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홍기택 전 회장을 비롯해 현 이동걸 회장 등 산은 수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낙하산 인사다. 산은 회장이 임명될 때마다 ‘전문성’ 논란이 일지만 낙하산 관행은 바뀌지 않는다. 금융당국도 산은을 제대로 감독했는지 의문이다. 금융감독원은 2014년 8월 산은이 STX에 3000억원 규모의 부실대출을 해줬다며 산은의 전·현직 임직원 12명에 대한 징계를 추진했으나 1명 경징계라는 ‘솜방망이 제재’로 마무리됐다.

산은 전직 인사는 “홍기택 회장 시절 STX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낼 경우 발생할 수조원대 부실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경기가 좋아질 때만 기다리다 결국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하준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책은행은 정책자금을 통해 부실기업을 계속 지원하고 위기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당국과 정치권의 눈치만 보게 되는 직무유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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