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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류경식당의 정체와 탈북의 재구성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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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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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별칭을 딴 이름인 ‘류경’은 흔히 ‘닝보 최초의 북한 식당’이라 불렸습니다. 담벼락에는 청사초롱과 ‘조선(북한) 여성’의 그림이 줄줄이 내걸렸습니다. 곳곳에 북한의 ‘인공기’가 걸려있고 태극무늬가 그려진 북도 보입니다. 한글로 적힌 ‘조선식당 류경’이란 간판도, 종업원들이 입고 있었을 한복도 분명 북한 식당의 아이콘입니다.

그렇다고 이 식당을 단순히 북한 식당이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집니다. 메뉴 대부분은 북한 음식이 아닙니다. 중국 8대 요리 계보로 꼽히는 ‘저장 음식’ 가운데서도 신선한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닝보 음식’이 주 메뉴입니다. 약 15명의 주방 구성을 보더라도, 빈대떡·비빔밥 담당 1명과 냉면 담당 1명을 빼면 주방장을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닝보 사람들입니다.

식당의 소유주나 경영자도 모두 닝보 사람들이고, 손님들도 대부분 닝보 사람들이었습니다. 북한 종업원들은 다달이 월급을 받으며 홀 서빙과 공연을 맡았습니다. 점심·저녁 각 30분씩의 공연에서 북한 노래는 1곡 뿐이고, 나머지는 중국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면서 손님들의 성원을 받았습니다. 2명은 정문 앞에 나와 시민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도 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북한 테마 식당’ 정도면 적당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식당이 위치한 저장성 닝보(寧波)는 우리식대로 읽으면 ‘영파’입니다. 고대로부터 황해의 대표적 물류 중심지였고, 장보고 시기를 다루는 우리 역사책에도 등장하는 항구 도시입니다. 중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인 장제스(장개석)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류경의 북한 출신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온 뒤, 이젠 닝보라 하면 류경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낯선 도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 억압

류경 종업원들은, 여느 다른 곳 북한 식당 종업원들처럼, 감시받고 억압받는 삶을 살았던 듯합니다. 종업원 관리를 맡는 지배인(경리) 남성 1명과 여성 종업원 19명 외에 ‘안전원’ 또는 ‘부지배인’으로 불리는 남성 1명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어를 못했다는 이 안전원은 ‘감시’가 주된 임무였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하는 숙소에선 쉬는 날에도 단독 외출은 금지됐고, 4~5명이 함께 다니는 것만 허용됐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거주 인원 수를 신고하도록 돼있는 중국 기준에 맞춰, 해당 아파트가 허용하는 최대 인원인 7명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휴대전화 이용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선 주로 스마트폰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 정부가 “이들 종업원은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티브이,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북한 체제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됐으며 최근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 건 어떤 경로였는지 궁금합니다. 여성 종업원들은 간혹 이 식당에 인턴 조리사로 일하던 대학생 2명의 휴대전화를 빌려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국 드라마를 자유롭게 보는 건 아니었다. 몰래 보는 식이었다”는 게 류경에서 일했던 중국인 인턴 조리사의 전언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5일 북한 식당 종업원 출신 탈북자인 명성희씨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생활을 소개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아비판을 묘사한 대목입니다. “지배인은 지속적으로 종업원들을 감시했다. 며칠마다 돌아오는 자아비판에서는 북한에 대한 완전한 충성으로부터 벗어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지적하도록 했다.”

인턴 조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류경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니들이 종종 혼나는 일이 있었다. 밥 먹을 시간인데 오지 않아서 찾으러 가보면, 한줄로 서서 지배인이나 부지배인에게 혼나고 있었다.”

식당이 위치한 난탕라오제는 새로 조성된 전통문화 거리로, 하루종일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쁜 건물과 맛집, 그리고 사진을 찍는 젊은 여성들…,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20대인 류경의 여성 종업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류경 인근 상인들은 하나같이 “그 집 종업원들은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아 신비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전 9시께 숙소를 나와 밤 9~10시 돌아올 때까지 줄곧 류경 안에만 있었다고 합니다.

류경 바로 옆에 위치한 라이브 바의 직원들은, 지난 겨울 어느날 밤 일을 마친 류경 종업원들이 단체로 온 적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술 없이 음료수만 시켜놓고 음악을 실컷 듣다 갔다더군요. 지난 11일 저녁 이 바에선 ‘무지개 너머 어딘가’(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류경과 2m 길을 놓고 마주한 카페에선 하루종일 ‘케이 팝’이 흘러나왔습니다. 명성희씨는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도망 가면 성매매 조직에 팔려가고 말 거란 위협을 들으며 북에 남겨둔 가족 걱정에 엄두를 못냈다고 전했습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류경의 종업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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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탈출=13명

지난 5일에 일어난 ‘탈출’을 재구성하기 위해선 19명의 여성 종업원을 각 그룹으로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편의상 ‘항저우 그룹’ 3명, ‘상하이 그룹’ 12명, ‘잔류 그룹’ 2명, ‘행방불명’ 2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과만 보면, 상하이 그룹 12명은 지배인 ㅎ씨와 함께 5일 류경을 탈출해 상하이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7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항저우 그룹 3명과 잔류 그룹 2명은 지난 13일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행방불명 2명은 17일 현재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5일은 이들과 함께 류경에서 지내던 안전원(부지배인)이 잠시 출장을 가면서 자리를 비운 날이었습니다. 출장지나 출장 목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감시를 총괄하는 보위부 책임자가 베이징으로 잠시 출장 간 틈을 타 집단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지만, 별도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한 것 같진 않습니다. <한겨레>가 취재한 류경 관계자들과 대북 소식통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탈출극의 발단은 항저우 그룹 3명이 갑자기 사라진 사건이었습니다. ㅎ씨는 중국인 경영진에게 이들이 도망간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ㅎ씨가 종업원들의 여권을 찾으며 부산을 떠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ㅎ씨는 남은 여성 종업원들과 더불어 사라진 3명을 찾겠다면서 식당을 나섰습니다. 상하이 그룹 12명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실로, 이들 13명은 곧장 육로로 상하이로 이동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류경에서 상하이 홍차오 공항까지는 211.3㎞, 막히지 않으면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런 면에서 북한쪽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배인(ㅎ씨)이 종업원들에게 먼 곳으로 교대봉사근무를 나가야 하는데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숨어서 가야 한다고 속였으며, 비행기 안에서 ‘남조선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거짓말로 얼러넘겼다”고 하는 건 의아스럽습니다. 상하이 그룹이 애초부터 한국행을 목표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애초 식당을 나선 것은 항저우 그룹 3명을 찾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3. 귀환=5명

나중에 보니 항저우 그룹은 도망친 게 아니었습니다. 류경 관계자는 “ㅎ씨가 우리를 속인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들은 차량 또는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인근 대도시 항저우에 가서 북한 쪽 인사들을 데리고 5일 저녁 닝보로 돌아왔습니다. <문화방송>이 보도한 종업원 숙소 인근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면, 이날 밤 10시께 여성 종업원 3명이 남성 2명을 대동하고 종업원 숙소로 쓰던 아파트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항저우 그룹입니다. 숙소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3~4분 만에 나옵니다. 남성 2명은 항저우에 상주하는 보위부 소속 인사들로 추정됩니다. 북한 쪽은 이들의 닝보 도착과 동시에 상황 파악에 돌입했습니다.

항저우 그룹과 잔류 그룹은 한동안 보위부 추정 남성들과 닝보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은 “괴뢰 국정원이 모략해서 백주에 우리 처녀들을 납치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여성 종업원 5명은 1주일 가량 지나 13일 새벽 북한으로 떠났습니다.

상하이 그룹의 집단 행동 전에 항저우 그룹이 보위부 추정 남성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다녀온 것은,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지난 13일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종업원 중에 탈북자가 나오면 식당은 철수해야 하고 나머지 인원은 연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탈북 전날 저녁에 운명을 놓고 격론이 오갔고 이 다툼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나 봅니다”라고, 이번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항저우 그룹 3명의 행적에 대해 “발단은 그 식당 여종업원 3명이 (한국에 가려고) 먼저 도망친 것”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보아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이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주 기자의 언급이니 일단 짚어둡니다. 난탕라오제 관리당국 소속 경비원 등도 ‘내부 다툼’이 원인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어 더욱 눈길이 갑니다.

4. 행방불명=2명

끝으로 행방불명 2명입니다. 이 두 사람은 애초 상하이 그룹과 같이 한국으로 가려 했던 듯한 정황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하이 그룹 가운데 5명과 숙소를 같이 썼고, 2명 가운데 한명은 지배인 ㅎ씨와 각별히 사이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하이 그룹이 사라지던 날, 이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상하이행 고속도로를 향해 이동하던 중 오후 6~7시께 식당 관계자들에게 붙잡혀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공안 당국 조사 등을 받으며 “이제 (북한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상하이로 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는 상하이 그룹 13명이 한국을 향해 떠난 이상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 뻔한 북한에 가긴 힘들어졌다는 뜻이라고 류경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인 6일 식당 관계자들과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두 사람은 다시 자취를 감췄습니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조선일보>는 지난 12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종업원 일부도 안전한 곳에서 한국행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고, 같은 날 <연합뉴스>도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남은 종업원 중 일부는 우리 정부의 보호 아래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혹시 두 사람 이야기는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틀 뒤 14일 <연합뉴스>는 다시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보호중인 북한 종업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상반된 기사를 냅니다. 두 보도 중 하나가 잘못됐든지, 아니면 12일과 14일 사이에 ‘보호 아래 있던 이들’의 신병과 관련된 상황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만약 12일 현재 행방불명 2명이 한국 정부 보호 아래에 있음에도 아직 한국 입국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상하이 그룹 13명의 입국을 서둘러 발표했던 정부의 태도는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주변국을 자극시켜 남은 2명의 출국 경로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경 관계자들은 북송시 분명 처벌될 것으로 보면서, 이들의 안위를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5. 왜 탈출했을까

중국 공상국 자료를 보면 류경은 지난해 8월 등록했지만 주변 이야기로는 지난해 말~올해 초에야 제대로 개업을 했다고 합니다. 도중에 사장이 한번 바뀌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도중에 경영구조가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류경은 다른 많은 중국의 식당들처럼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선불카드를 판매했지만, 개업이 늦어지면서 고객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식당 주변을 돌며 류경의 상황을 묻고 다녔더니, 한 상인은 “왜 그러냐. 선불카드 샀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실질적 개업을 한 지 이제 갓 3~4개월이 됐는데, 졸지에 이 식당의 최대 특색이었던 북한 출신 종업원들이 사라져 문을 닫게 됐으니, 그날 이후 중국인 경영진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지배인 ㅎ씨는 최근 경영진으로부터 125만위안(약2억2100만원)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종업원들이 온 지 반년 정도 되어서 그만큼의 월급 40만여위안에 더해, 향후 1년치 월급 80만여위안을 미리 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겁니다. 식당 관계자는 자세한 사정에 대한 설명 없이 “줘야 할 돈을 주는 거라, 장부상의 돈을 줬다”고 했습니다. 종업원 한 사람당 받은 월급이 대략 4000위안(약 70만원)씩이었다 하니 숫자는 얼추 맞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나온 <취업청서-2015년 중국대학생 취업 보고>라는 자료를 보면 2014년에 졸업한 대졸자 월 평균 수입이 3773위안이었으니, 아주 박한 급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 경영진은 법적 대응 가능성에 대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형사사건이 아닌 이상 범죄인 인도 청구 대상이 될 수 없으니, ㅎ씨를 강제로 돌아오게 만들 방법은 없다는 겁니다. ㅎ씨가 급여 명목으로 가져간 돈을 종업원들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횡령 혐의 적용도 가능하겠지만, 과연 중국 당국이 외교적 부담을 지면서 거기까지 나서겠느냐는 좌절감도 녹아있습니다.

ㅎ씨가 어디에 쓰려고 미리 1년치 급여를 받아갔는지는 베일에 가려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5월초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상납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한 부담 때문일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월급 4000위안 가운데 3000위안이 당국에 보내는 돈이었다니 보내면 될 일인데, 왜 문제가 됐을까요?

한편, 식당 관계자는 그가 빚이 많았던 걸로 안다고 했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중국 내 다른 도시 북한 식당에서 일했던 시절부터 빚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게 주 임무인 ㅎ씨가 무슨 이유로 돈을 빌리고 다녔던 걸까요. 북한 쪽은 ㅎ씨에 대해, “인간쓰레기, 범죄자, 사기군, 도적”이라고 원색 비난을 하면서 “괴뢰정보원(국가정보원)에 매수된”이라고 주장합니다. ㅎ씨에게는 닝보에서 함께 생활하다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부인도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에게 모든 걸 버리고 목돈을 쥔 채 한국을 향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가족 얘기를 하자면, 한국으로 간 상하이 그룹 여성종업원 12명도 모두 같은 처지입니다. 한국행이 북에 있는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은 다들 알았을 겁니다. 북한은 이들이 일방적으로 ㅎ씨에게 속아 한국으로 가게 된 ‘유인 납치’의 피해자들이며, 현재 진행중인 남쪽의 조사 과정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주장합니다. 북으로 돌려보내라는 거지요. 북쪽이 저렇게 방방 뛰는 반면, 우리 정부는 의외로 침착합니다. 분명 탈북자들을 조사하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13명에 대한 조사에 진전이 있을텐데, 입국 이튿날 서둘러 공개하던 정부의 ‘패기’는 어디 간 걸까요?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선거용 북풍’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국회는 왜 침묵하나요? 19대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을 상대해온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외교부·통일부를 상대하는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아직 임기가 한달여 남았습니다. 상하이 그룹 13명의 입국 이튿날부터 ‘독자 제재 효과’를 거론하며 흥분했던 정부의 판단을 따져봐야 하지 않나요? 개성공단 폐쇄 발표(2월10일)와 독자 제재 발표(3월8일) 등 정부의 방침이 실제 류경의 경영에 영향을 줬는지, ‘월급쟁이’인 종업원들이 정부 발표대로 압박을 느껴 한국행을 고민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나요? 또 섣부른 발표로 행방불명 2명을 위험에 빠뜨린 건 아닌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류경 종업원들의 예전 사진들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모여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셀카’를 찍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동료들이었지만, 일부는 남으로, 일부는 북으로 가면서 앞으로 한동안, 또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길을 가버렸습니다. 아무쪼록 이들 개개인의 결정이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를, 그 결정에 의해 피해가 생기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김진철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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