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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호남, 親盧와의 12년 동거 끝…적통 국민의당에 넘겨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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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 4·13 / 호남·충청·강원 결과 분석 ◆

호남의 주인이 바뀌었다. 변심한 호남은 야권의 텃밭 내전의 승자로 국민의당 손을 들어줬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친노세력이 주축이 된 열린우리당이 새천년민주당을 밀어낸 이후 12년 만에 호남의 간판이 바뀌게 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던 호남이 '친노'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인 것이다. DJ의 후예인 동교동계가 포진한 국민의당이 다시 '고토'를 회복하며 호남의 적통을 움켜쥐었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호남의 패권 판도 역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14일 0시 30분 현재 광주·전남·전북 28개 선거구 중 23곳에서 국민의당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은 단 3곳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에선 호남 28석 중 '다야(多野)'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구가 26개에 달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 '거물' 이용섭 꺾은 권은희

이번 총선에서 호남 의석수는 2곳이 줄어든 총 28석. 광주 8곳, 전남·북 각각 10곳씩이다. 이 중 국민의당이 전남·북에서 각각 9곳, 6곳을 거머쥐었다. 특히 광주에선 전체 8석 모두를 국민의당이 싹쓸이했다.

개표율 59.78%인 광주 서을에선 국민의당 천정배 후보가 55.07%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후보(30.56%)를 꺾었다. 천 후보는 6선 고지에 올라 광주전남 최다선으로서 호남 맹주 자리에 다가서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저격수'로 삼성전자 최초 여성 임원 출신 양 후보를 내세웠지만 결국 저격에 실패했다. 천 후보는 당장 국민의당을 강력한 3당으로 안착시킨 공을 안철수 대표와 나눠 가짐으로써 차기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천정배 후보는 당선 소감을 통해 "녹색바람의 진원지로서 정치혁명을 주도해준 호남 유권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개표율 90.43%인 전주 병에선 국민의당 정동영 후보(48%)가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후보(46.69%)를 꺾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 사이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 지역에서 정 후보는 자신의 보좌관을 지냈던 김 후보를 간발의 차로 물리쳤다. 15·16대 총선에서 이 지역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던 정 후보는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데 이어 이번에 4선 고지를 밟게 됐다. 2007년 대선에서 야당의 대권후보로 이명박 후보와 맞섰다가 패한 뒤 지역구를 옮기며 당선과 낙선을 반복했던 정 후보는 이번에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면서 천정배 후보, 박지원 후보와 호남 맹주를 놓고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광주 광산을에선 개표율 91.54%인 가운데 국민의당 권은희 후보가 49.98%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이용섭 후보(43.4%)를 눌렀다. 권 후보가 수성에 성공하면서 광주 최초 여성 재선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권 후보는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수사 방해 외압 의혹을 제기하면서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야권의 상징적인 인물로 영입됐다. 반면 이 지역 재선인 데다 국세청장·관세청장·건설교통부장관·행정자치부장관 등을 역임한 이 후보는 분루를 삼켰다.

전남 목포에선 개표율 83.36%인 상황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후보(56.83%)가 더불어민주당 조상기 후보(19.56%)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4선 고지를 밟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동교동계의 실질적 좌장 역할을 해온 박 후보는 안철수·천정배 대표와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하며 호남에서 '친노'를 몰아내고 DJ 바람을 다시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박 후보는 "더 큰 정치에 도전해 정권교체로 보답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적진에 뛰어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정운천 후보가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호남에 또 다른 역사가 쓰여지게 됐다.

전남 순천에선 18년 만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았던 '원조 친박' 이정현 후보가 개표율 91.79%인 가운데 45.67%로 더불어민주당 노관규 후보(38.32%)를 물리쳤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호남 유일의 여당 의원이 되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던 이 후보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호남에서 유례없는 여당 3선 의원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특히 이 후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새누리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호남에서 지역구 재선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순천 시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는 개표율 83.85%인 상황에서 38.35%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후보(36.58%)를 누르면서 '제2의 이정현'으로 등극하게 됐다. 새누리당 후보로서는 20년만에 전북에 깃발을 꽂은 것이다. 정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농림수산부 장관을 마친 뒤 이 지역 국회의원과 전북도지사 선거에 연거푸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 희비 엇갈린 안철수·문재인

호남 내전의 승리로 안철수 대표는 날개를 달았다. 호남이란 든든한 '집토끼'를 기반으로 수도권과 충청권을 지렛대 삼아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던 더불어민주당의 위상은 크게 약해진 반면 그 빈자리를 국민의당이 차지하게 됐다. 안 대표는 부산 출신으로 호남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대권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제2의 노무현' 드라마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호남당' 딱지를 달면서 전국적인 지지를 노리는 안 대표로선 만만치 않은 짐을 동시에 안게 됐다.

반면 선거 막판 호남을 찾아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적지 않은 내상을 입게 됐다. 텃밭 호남을 안 대표에게 빼앗기면서 두 대권 후보의 위상은 역전됐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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