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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신혼 아내 두고 올 만큼 급했나…‘기획탈북’ 의혹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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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 종업원 집단탈북 미스터리

탈출주도 지배인 ‘결혼 1년6개월’

같은 식당 일하는 아내 동반 안해

“지배인, 돈 2억여원 훔쳐 달아나”

소식통 “중국 동업자, 공안에 신고”

‘대북제재 탓 탈북’ 당국 설명과 배치

이례적인 ‘하루만에 입국’

3국 통해 오려면 서류준비만 몇달

탈북자 “국정원서 미리 준비한듯”


한겨레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식당 ‘류경’ 관계자가 12일 낮 식당 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류경은 문을 열지 않았지만, 일부 직원들이 안에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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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깜짝 공개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식당 지배인 ㅎ(36)씨는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아내를 중국에 남겨두고 남한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ㅎ씨가 식당을 동업한 중국인 사장의 돈 150만위안(2억6500만원)을 가로채 달아났다는 증언들도 잇따른다. 지배인·종업원 13명이 오랜 시간 치밀하게 계획하기보다 어떤 이유에선가 급박하게 탈출이 이뤄진 정황이 연이어 나오면서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기획 탈북’이라는 의혹도 더욱 짙어지고 있다.

12일 <한겨레> 취재 결과,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에는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소속인 20명의 지배인·종업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13명이 이번에 탈북했고 나머지 7명은 중국 현지에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는 이번 국내 입국을 주도한 지배인 ㅎ씨의 아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중국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사정에 밝은 현지 소식통은 “지배인 ㅎ씨의 아내를 포함한 종업원 등 7명이 생필품 등을 구매하러 외출한 사이에 ㅎ씨 등 13명이 탈출했다”고 말했다. ㅎ씨는 결혼한 지 1년6개월가량 된 것으로 알려졌다. ㅎ씨는 함께 출국한 여성 종업원들의 여권을 관리해왔는데, 아내가 외출한 사이 집단 탈출한 점으로 미뤄 자신들만의 계획이라기보다 뭔가 긴박한 상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자는 “여권을 관리할 정도로 힘을 가진 지배인이 부인을 놔두고 계획 탈북한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ㅎ씨가 중국인 동업 사장의 돈 150만위안을 가로채 달아났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지배인이 중국인 동업자의 돈 150만위안을 갖고 사라져, 중국인 동업자가 공안에 신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당 식당 근처의 한 상점 주인도 “식당이 하루 밤새 문을 닫았는데, 중국 사장의 거액을 가져갔다는 소문이 있다. 사장이 아주 곤란하게 됐다는 얘기들을 한다”고 전했다. ㅎ씨가 탈북을 주도한 이유가 이런 사정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탈북 관련 업무에 밝은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북한 해외사업이나 무역에 종사했던 사람들 중 돈 문제로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ㅎ씨의 이런 상황이 탈북 배경이라면, ‘북한식당 이용 자제 계도 등 한국의 독자 대북제재가 집단 탈북으로 이어졌다’는 정부 당국의 설명은 들어맞지 않게 된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당국자는 “통상 탈북 과정을 정부가 조력하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진 않는다. 무리하게 ‘집단 탈북’을 만들어내려 한 듯한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ㅎ씨 등 북한식당 노동자 13명은 지난 5일 식당이 있는 닝보에서 상하이로 육로를 이용해 이동한 뒤 6일 아침 말레이시아를 거쳐 7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는 북한 국적자가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입국 관련 서류 작업은 전례와 달리 극히 신속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 파견 중 탈북한 40대 남성은 “제3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 서류 준비 등에 길게는 몇 달씩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번처럼 말레이시아를 바로 찍고 들어왔다면 정보기관이 미리 다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탈북 관련 국내외 민간단체들도 이번 집단 탈북 사실에 대해선 정부 공개 이후에야 알았다는 전언들이 나온다. 탈북 과정을 국정원 등 정부기관이 지원할 때에도 대개는 민간단체들이 탈북 경로를 확보해 탈북자들을 돕게 하고 당국은 조력하는 구실을 맡아왔다. 이번엔 관련 사안을 파악하고 있는 민간단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인권단체들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집단 탈북이 공개됐다. 국정원이 이번 탈북을 기획·주도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의 중국 출국 직후인 6일 낮 중국 공안에 이들에 대한 실종신고를 했고, 중국 공안은 7일부터 중국인 사장의 피해 상황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중국 정부가 북한식당 종업원 등의 출국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진철 기자, 닝보/김외현 특파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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