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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김용태 “내가 오직 두려운 건 신월동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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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BAR_청춘, 정치를 직접 묻다_김용태 편

한 사람의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인터뷰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인터뷰‘이’이지만 그 말을 끌어내는 사람은 인터뷰‘어’입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세계관이 한 데 어우러져 완성된 텍스트가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정치BAR에서는 새로운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정치팀 기자가 아닌 청년들이 정치인을 만납니다. <한겨레> 토요판에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이승한씨와 20대 청년 강남규·유지영씨가 그들입니다. 기존 정치 문법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정치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색다른 케미가 기대되는 ‘청춘, 정치를 직접 묻다’! 두번째 주인공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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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안 이야기는 재미없다. 여러분이 청년이니까 살아온 이야기, (서울 양천을) 여기서 정치하는 이야기, 내가 왜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대놓고 이야기하는지, 이렇게 순차적으로 들어보시면 (나라는 사람이) 이해가 될 거다.” 사전에 김용태 의원실로 보낸 질의서를 앞에 두고 김용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질의서에는 새누리당과의 관계, 최근 친박과 비박간 벌어졌던 살생부 논쟁 같은 민감한 질문이 포함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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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간의 방백

그는 인터뷰 중 우리를 세 번 일으켜 세웠다. 아무래도 자신을 좀 알고 인터뷰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사무실 한가운데로 불러내 양천구의 역사를 한 호흡에 훑은 게 첫번째였다. 마치 인터넷 강의 강사처럼 유려하고 정연하게 이미 여러 번 반복해 말해본 솜씨였다.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한 험지를 8년간 지켜낸 자부심이 어쩔 수 없이 새어나왔다.

“야당이 여기서 28년 동안 ‘집권’했다. 여기가 땅값이 서울에서 가장 싼 지역이다. 가장 가난한 동네라는 얘기다. 비행기가 하루에 340대씩 날아간다. 창문을 열면 전화통화도 어렵다. (나는) 서민 최대 밀집지역에서 새누리당 낙하산으로 국회의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다. 각급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한 번도 못 이겨본 지역이다. 시의원·구청장 전패. 그것도 10~20%포인트 차이로 지는 지역이 이곳이다.”

30분간의 숨쉴틈 없던 방백을 그는 “내 정치 슬로건만 말하고 종료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통령, 검찰총장, 국정원장? 천만의 말씀. 내가 오직 두려워하는 건 신월동 주민이고 국민이다. 그래서 슬로건이 ‘두려운 것은 오직 국민뿐, 믿을 것 또한 국민뿐’이다.” 약속했던 인터뷰 시간의 절반이 날아갔다.

‘나는 유일하게 신월동 주민만 믿고 간다’는 그의 말에 “아무리 그래도 공천권을 쥐고 있는 중앙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인터뷰를 끊고 우리를 또 일으켜세웠다. 대답 대신 사무실 한 켠으로 와보라 손짓했다.

“정치를 이렇게 리얼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다. 이런 데서 봐야한다.”

사무실 한켠에는 그가 지역구민을 상대로 연 ‘민원의 날’ 행사를 정리한 130개의 폴더가 차곡차곡 꽂혀 있었다.

“2010년 처음 민원의 날을 시작했고 총 130차, 총 1만5000명을 만났다.”

양천구에서 이렇게 열심히 민원의 날 행사를 열었으니 새누리당의 눈치볼 일 없다는 대답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공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다.

“여러분이 정치를 안해봐서 모른다.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이 공천에 대한 스트레스다. 4년 동안 했던 일이 공천 유무로 결정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친박 손에 죽느니 신월동 주민 손에 죽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아마 공천 못 받으면 못 나갈 거다. 그 정도로 살벌한 거다.”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터전이 굳이 새누리당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세번째로 우리를 일으켜세웠다. 새누리당 당원연수자료집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이 만든 자료집을 건넸다.

“이걸 읽어보시면 내가 왜 새누리당을 선택했고 왜 남아있는지, 왜 새누리당과 가열차게 싸우는지 알 수 있다. 아끼기 때문에 싸우는 거다. 아끼지 않으면 싸울 일이 전혀 없지. 나는 역사를 단절적으로 보지 않는다. (새누리당에) 부끄럽지만 껴안고 가야 할 유산이 있다면 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더 중요한 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선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그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기보다 서울 양천을의 대표로서 더 자연스러워보였다.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양천구의 역사를 먼저 꺼냈고, 중앙당의 공천권에 대한 답변을 할 때도 ‘양천을’ 얘기를 먼저했다.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하기엔 온 정신이 지나치게 ‘양천구’에 몰입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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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3일,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지역구민을 상대로 연 ‘민원의 날’ 행사 성과를 청춘 인터뷰어에게 설명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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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수 끝에 들어간 서울대, 그리고 민중당

가까스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가 개인사를 얘기했다. “할아버지가 9남매를 낳았다. 가난이 그야말로 일상. 밥 굶는 건 밥 먹는 거랑 거의 비슷한 매일매일의 일인 거다. 근데 대개 현대사의 멋진 장면에는 이런 집안을 구하는 영웅이 하나 나오기 마련이지 않나.”

Q. 한 명은 나가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A. “그게 내 큰아버지다. 정말 머리가 너무 좋아서 독학으로 서울대 문리대에 들어갔다. 이런 사람은 정치하든지 사업하든지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 사람이 빨갱이가 된 거다. 알고보니 원래부터 빨갱이였어. 해방공간에서 좌익은 흔했던 일이니까. 원래 북상해서 후퇴했어야 했는데, 토굴 파고 숨어있다가 동네 사람에게 발견돼 총살됐다. 이게 현대사 1950~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일이다.”

그는 큰아버지를 좇아 서울대를 꿈꿨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정치학과에 가고 싶었다. 세 번 도전해 실패한 뒤 입대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5수를 했다. 어렵게 들어갔는데 공부는 안했다.”

Q. 선배나 친구를 잘못 만났나?
A. “그냥 안 하게 됐다.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가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동구권이 붕괴하기 시작했거든.”

5수 끝에 입학한 그해는 구소련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던 1991년도였다. “선배들이 이야기하던 사회주의 모국 소련을 직접 가봐야겠다 싶어서 소련에 갔다. 91년 8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붕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봤다. 그때 만났던 소련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물가가 100배 올랐고, 여학생이 매춘하는 광경을 보게 됐다. ‘아, 정치가 잘해야 하는구나. 정치라는 게 이상도, 뜻도, 비전도 좋고 중요하지만 현실에 튼튼히 발 디딘 정치가 중요하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는 그때 정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민중당이었다.(*편집자주: 민중당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진보 성향 정당이다. 1992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해 해산됐다. 해산 뒤 당 지도부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으로 건너갔다.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주장하던 잔류파 대다수는 노회찬을 중심으로 진보정치연합을 결성했다. 이후 민주노총과 연대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제발로 민중당을 찾아갔다. 폭력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제도권 정당으로 진입한 뒤 진보 정치와 새로운 민중주의를 관철해내는 정책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가진 당이었다.”

자원봉사를 하러 민중당에 찾아간 그의 눈 앞에 삐쩍 말라 밤에만 왔다갔다하던 사무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였다. 밤에 잠도 안자고 미친 듯이 일하던 사람은 김성식 전 의원. 심부름하러 갔더니 “뭐하는 놈이냐” 묻던 사람이 이재오 의원. 책상을 나르던 사람이 차명진 전 의원이었다. 김용태는 그때 그들을 처음 만났다. 그는 몇몇 언론에 의해 새누리당 안에서 ‘친문(김문수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Q. 민중당의 정책, 이념지향과 지금의 새누리당은 너무 다르지 않나.
A. “중요한 이야기다. 생각이란 게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김문수란 사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신봉하던 선수였는데, 이 사람이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은 안된다, 헌법체제 안에서 진보 운동 해야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민중당을 했다. 근데 1991년도에는 이런 말 자체가 불가능했다. 왜냐면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였으니까. 시대의 주역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포기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민중당이 이걸 끊은 거다. 어마어마한 혁명이다. 민중당과 새누리당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다.”

그는 1987년 이전과 이후를 ‘혁명의 시대’와 ‘헌법의 시대’로 구분했다.

“혁명의 시대에 성취한 놀라운 성과들이 있다. 그 성과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헌법의 시대다. 87년 헌법 체제가 만들어진 이래로 헌법 체제 안에서도 여전히 헌법을 믿지 못하고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다.”

Q. 민중당이 혁명의 시대에서 벗어나 헌법체제로 들어온 정당이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뜻인가?
A. “민중당이 혁명시대의 정당에서 헌법시대의 정당으로 들어온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꾸 김문수를 이야기할 때 변절자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거다.”

민중당에서 새누리당까지 오게 된 이유를 거듭 물었다. 헌법 정신 안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거나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이 자신의 생각을 변하게 했는지, 민중당 이후에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변혁을 추구했던 민주노동당이 있었음에도 왜 새누리당으로 갔는지, 그는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못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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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3일,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청춘 인터뷰어에게 자신이 만든 자료집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인터뷰어 강남규 유지영.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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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는 새누리당이 제일 잘 만든다, 아버지 자리 뺏어서

Q.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많은 청년들이 ‘현수막대로만 되면’ 이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인데 그 후로 도무지 변하는 모습을 체감할 수 없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청넌들은 새누리당을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A. “청년들이 힘들다, 그러면 새누리당의 반응은 두 가지다. ‘우린 더 했어, 인마. 열심히 해.’ 아니면 아예 이야길 안한다. 도망간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데 가르치려 들거나 회피하거나. 나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 청년들 일자리 만드는 데 새누리당 정책이 훨씬 도움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우리가 설명할 때 청년들이 못 알아듣는 외계어를 쓴다는 데 있다. 청년들은 ‘지금 나는 정말 힘들다. 당신들 열정페이가 무슨 말인지 아느냐’ 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고 이래야 되는데 이게 안되는 거다. 그러니 맨날 망하는 거다.”

Q. 청년들은 새누리당의 청년 일자리 정책을 ‘아버지 세대 고용을 흔들어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A. “그래서 안 하자는 거냐? 일자리 하늘에서 안 떨어진다.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 해줄까. 요새 알파고와 이세돌의 싸움이 항간의 화제다. 만일 알파고가 이기면 우리는 다 노예생활 하는 거다. 기술발전, 진보가 이렇게 비참하다. 386컴퓨터의 백배 속도의 컴퓨터가 이 손 안에 들어와 있는데, 우리는 왜 가난한가? 현실을 도외시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지금 어떤 나라도 고용보장 못 한다. 고통스럽고 어렵다. 한국은 먹여살려야 할 사람이 너무 많이 늘고 있다. 근데 어른들은 일자리를 놓지 않는다. 서울에서만 1년에 초등학교 33개씩 없어져야 한다. 학생 수가 그만큼 줄어드니까. 근데 학교를 안 없앤다. 선생들 월급 줘야 하니까. 전교조, 교총 그래서 살아있는 거다. 선생들은 월급 받아서 노동조합비 내는 거고. 국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학생들 그렇게 사라지는데 당연히 예산 빼서 다른 데 써야 할 것 아니냐. 이게 진실이다. 대우조선해양 안내데스크 여직원 연봉이 6600만원이다. 거기에서 용접하는 사람 연봉이 1억2000만원이다. 작년에 2조4000억원 적자났는데. 거기 노조가 어떻게 돼있는지 아나? 장기 근속자, 정년퇴임자는 일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줄 수 있게 돼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다 정치가 개판치는 거다. 선거 때마다 표주겠다고 해서. 최대 희생자가 청년들인 거다.”

그는 새누리당이 청년들과 통하지 않는 이유를 소통 부족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각성해 청년들과 소통에 힘쓰면 어떤 것들이 변할 수 있을까. 청년들은 새누리당의 정책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반사적으로 이익이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과연 소통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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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의원,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싶다

Q. 아무래도 살생부 이야기를 안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A. “지나간 이야기라 유의미하지 않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랄뿐. 벌어지면 국민들께서 납득하기 어려우실 거고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다.”

Q.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으로서 총선전략이 있나?
A. “복잡하지 않다. 중앙에서 해줄 일은 절차대로 빨리 경선에 들어가주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하루가 지나면 1%포인트씩 빠지고 저쪽(더민주)은 1%포인트씩 오른다. 우리는 당 지도부가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고 저쪽은 김종인 대표가 점수 따는 모습만 보여주니까. 빨리 경선 들어가야 한다.”

Q. 김용태 의원이 3선 돼야 할 이유는?
A. “경험이 늘어나면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일을 하나 할 때도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할 수 있다. 3선과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싶은 건 결국은 해결책을 기다리는 여러 문제를 다뤄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만약 실력과 자세를 못 갖췄다면 뽑아줄 리가 없지 않나.”

Q. 필리버스터는 정치인가?
A. “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더 빨리) 중간에서 멈췄다면 폼났을텐데. 나는 필리버스터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그랬다. 우리가 비판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고. 그래서 규탄대회하는 것도 반대했다. 만약 우리가 더 잘해서 국민들께서 선진화법 개정할 만한 표를 주면 그때 개정하면 된다. 나는 이런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Q. 국회선진화법이 수정돼야 한다는 소리?
A.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면 자기들도 바꿀 것이다. 백 번 맞는 이야기다. 서로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국회의원 한 명이 마음을 먹으면 국회 일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거다. 실제로 각 상임위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곳곳에서 엉망진창이다.”

Q. 효율은 민주주의의 특징이 아니지 않나. 입법부의 비효율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A. “민주주의여야 하는데 땡깡(조르기)은 안 되지.”

Q.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나.
A. “이런 건 본인들이 경험을 해보셔야 한다. 상임위에서 시행령 하나 고쳐 몇십만명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국회의원 한 명이 끝까지 딴지 걸면 아무 것도 못하는 거다. 얼마 전에 롯데쇼핑의 면세점 권한 뺏었다. 그래도 롯데는 ‘바잉파워(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업의 구매력)’가 있었는데, 신세계랑 한화는 루이비통이 지금보다 수수료를 더 내려달라고 한다. 우린 완전히 망해버린 거다. 면세점 안에 루이비통 없으면 중국 사람들이 와서 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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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3일 한겨레 정치BAR <청춘 직접 정치를 묻다>에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을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인터뷰어 강남규, 이승한, 유지영.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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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의 시선
말은 시원시원하게 던지지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아니었다. 당내 권력관계에서 눈치를 살피지 않고 시원하게 자기주장을 펼쳐 소장파의 위치를 획득했지만, 주장의 내용을 뜯어보면 그것은 형식으로서 소장파이지, 내용으로서 소장파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주목할 만한 1분
큰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빨갱이’였다고 말한 순간. 현직 보수정당 국회의원의 입으로 직접 듣는 빨갱이라는 말이 문득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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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의 시선
지역구 의원으로서 자신의 지역구에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중앙 정치인으로서 답해야 했던 중요한 질문들에선 미묘한 균열이 탐지되기도 했다. 애초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폭력 혁명을 믿어본 적 없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민중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겨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폭력 혁명과 민중당 사이의 간극은 민중당과 새누리당 사이의 간극보다 훨씬 더 넓다”고 이야기한다거나, 일자리 문제에 대해 늙은 노동자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청년 간의 파이 싸움 구도로 설명하면서 정작 그 일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고용주체인 대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거나. 지역의 유능한 일꾼인지는 지역구 주민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그가 그 이상의 큰 정치인이 되려면 적을 만드는 걸 각오하고서라도 조금 더 명확한 입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대중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잘 안 잡히는 사람을 신뢰하진 않으니까.
주목할 만한 1분
새누리당이 청년들에게 말 걸기를 실패하는 이유는 자꾸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건 여러분들이 정치를 안 해봐서 그러는데”, “여러분도 더 경험해보면 알겠지만”이라고 말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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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시선
총선까지 한 달, 선거운동만으로도 촉박한 가운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바빠 보였고, 때로는 험지에서 3선에 도전한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돼보였다.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이 안나오고 계속 양천을 이야기로 빠진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는 양천을과 사랑에 빠진듯 했다. 그 사랑의 방향이 옳은지는 8년 동안 그를 지켜본 시민들이 가장 잘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주목할 만한 1분
민주주의여야 하는데 땡깡(조르기)은 안 된다던 순간. 민주주의와 땡깡(조르기)의 차이를 당신은 구분할 수 있나요?


인터뷰/이승한(33·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남규(26·대학생), 유지영(25·취업준비생)
정리/유지영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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