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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2년6개월 만에 재판받는 '좌익효수'…사필귀정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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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92>]호남 비하 글 게재한 국정원 직원…'늑장수사' 비판 이유는?]

머니투데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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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라디언(전라도 사람)들은 전부 씨족을 멸해야 한다."

과거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던 글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삼아 근거 없는 비방이 오가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의 직업이 알려지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바로 국내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직원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최근 '좌익효수'라는 ID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러 글을 남긴 남성 A씨(41)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A씨를 기소한 이후에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늑장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 검찰이 이같은 질타를 받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맞물려 처음 주목

좌익효수의 활동은 2013년 처음 드러났습니다. 수사 당국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중 대공수사국 요원인 A씨의 혐의를 포착했습니다. 다만 당시 수사 대상이었던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의 활동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A씨는 업무 지시를 받고 댓글과 글을 게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자발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인지 좌익효수의 글은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의 것보다도 원색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왜곡하는가 하면 광주시민과 호남 출신 인사들을 '홍어', '절라디언'이라고 비하했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아따 전(두환) 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절라디언 폭도들을 남겨둔 역사의 과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등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을 비하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개대중 뇌물현 때문에 우리나라에 좌빨들이 우글대고", "홍어에게 표를 주면 안 됨" 등입니다. 좌익효수라는 ID처럼 섬뜩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A씨가 올린 글의 양도 방대합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양만 2011년 1월15일부터 2013년 11월28일까지 게시글 16개와 댓글 3541개. 과연 공무원으로서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며 여가 시간에 이만한 양의 글을 작성할 수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 밖에도 A씨는 인터넷 팟캐스트 아프리카TV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망치부인' 이경선씨와 초등학생 딸에 대한 성적인 폭언도 서슴지 않아 공분을 샀습니다.

◇검찰의 늑장 수사, 결국 도마 위에

A씨의 활동이 이처럼 큰 충격을 줬지만 검찰은 좀처럼 수사에 나서지 않으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은 2013년 처음 좌익효수의 실체를 파악했고, 검찰은 같은해 7월 좌익효수에 대한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통합진보당 소속 오병윤 의원은 국정원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A씨를 고발했고, 이씨는 모욕과 명예훼손, 협박 등 혐의로 A씨를 고소했습니다.

절차에 따라 검찰은 사건을 배당했지만 수사는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A씨는 고소·고발당한 이후 11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검찰에 출석해 1차례 조사를 받았고, 그 이후로도 1년 넘게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좌익효수라는 이름이 잊혀갈 무렵 최근 국회에서 이 ID가 다시 거론됐습니다. 당초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A씨를 대기발령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최근에야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입니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이병호 국정원장은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앞서 국정원은 A씨가 6개월에 걸친 대기발령 기간이 끝나 원대복귀했다고 알렸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같은 시기 수사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상고심을 거쳐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것과 비교할 때 A씨에 대한 수사가 너무 진척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정치적 판단 때문에 수사를 미룬다는 비판이 흘러나왔습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검찰은 지난 26일 A씨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사건을 파악한 지 30개월, 처음 고발을 접수한 이후 28개월 만의 일입니다.

◇'사이버 명예훼손 엄단' 강조해온 정권…사필귀정 이뤄질까

검찰의 처분은 사이버 명예훼손을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정부의 입장에도 어긋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며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겉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마란다"고 주문했습니다.

검찰과 법무부도 대통령의 의지에 화답했습니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을 단속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검찰청은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소집한 뒤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가 '사이버 검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정 지역을 근거 없이 비하한 좌익효수의 글이 우리 사회 분열을 부추긴다는 점은 명백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말대로 철저히 그 행위를 밝혀내 다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사이버 검열' 의혹까지 받아 가며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했던 것과 비교하면 A씨에 대한 처분은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재판을 통해 A씨가 자신이 지은 잘못에 대해 처벌받는 '사필귀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김만배 기자 mbkim@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양성희 기자 yang@mt.co.kr, 황재하 기자 jaejae32@mt.co.kr, 한정수 기자 jeongsuhan@, 이경은 기자 ke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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