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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장강명 "관심은 내면 아닌 밖으로, 한국 이야기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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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무기로 문학상 휩쓴 기자 출신 소설가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성실히 다니던 신문사에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휴대전화를 끄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심장이 두근거려 혼났다.

아내는 다행히도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을 이해했다. 다만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말했다.

이듬해 연말까지 소설가로 돈을 벌지 못하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내의 허락으로 얻은 1년 3개월, 그는 시험 앞둔 고시생이 공부하듯이 소설을 썼다.

15개월 중 11개월이 지났다.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그동안 통장에 들어온 돈은 겨우 30만원이었다. 홍보업계에 취직할까, 기술을 배울까, 언론계로 다시 들어갈까,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하던 그때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받는다.

상금은 5천만원. 작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1년 더 늘어났다. 뛸 듯이 기뻤다.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전업 작가로 살고 싶어 쉬지도 못했다.

그는 올해 들어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 2011년 동아일보에 다닐 당시 '표백'으로 받은 한겨레문학상까지 포함하면 문학상만 4개째다. 상금을 전부 합치면 1억5천만원.

'괴물 신인'의 등장은 다사다난했던 올해 문학계에서도 단연 화제다. 장강명(40). 문학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기자 출신 소설가. 혜성처럼 나타나 '현실'을 무기로 문학계에 새 바람을 넣은 그에게는 '문단의 이단아', '문예창작과 대항마'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문단을 벗어나면 그는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열어가는, 이 시대 직장인이 부러워하는 남자다. 그를 서울 시내 출판사에서 만나 지난 이야기와 꿈에 대해 들어봤다.

"행복합니다. 하지만, 변신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운이 너무 좋았고, 책이 온전히 자력으로만 팔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트렌드의 덕을 봤습니다. 다만, 작가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내년, 내후년에도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요."

장강명 작가는 2013년 직장을 그만둔 후 2년간 이룬 성공 앞에서 겸손해했다. 소설가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강도가 낮아졌을지언정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오전 6시 27분에 기상 알람을 맞추고 6시 30분이면 노트북 앞에서 작문을 시작한다. 일주일 50시간, 일년 2천200시간 작문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가만히 있으면 폐인이 될 것 같아서' 세운 계획이라고 한다.

집필 과정이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신문사에서 정치부, 사회부, 산업부를 거치며 밤낮없이 일할 때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말이다.

그는 "하루 8시간 일하면 일이 오후 4∼5시쯤에 끝나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보람도 있고 휴가 온 기분이다. 그렇게 2년 보냈더니 어디 가면 몸도 피부도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웃었다.

지난 5월 서점에 나온 '한국이 싫어서'는 '그가 팔리는 소설을 쓰는 작가'임을 확인해주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그의 작품 중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호응을 얻고 있다. 기획기사를 쓰듯이 취재하고 살을 붙여 만들었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에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 속에는 한국에서의 험난한 삶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 소설에 대한 대중의 호응은 그가 여러 문학상을 받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바로 희소성이다. 현재의 문제와 고통, 좌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출판계에서는 드물다.

이에 대해 장 작가는 "한국소설에서 현실과 접점이 있는 서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매해 있었다"며 "작가상을 잇달아 탄 것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기자 출신으로 서사에 강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따라온 운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신문사에서 소재를 찾아내는 감각, 취재력, 월급쟁이의 성실함을 배웠고 이것들이 지금 현재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작가의 소설은 줄줄이 출판을 앞두고 있다. 11월에는 '2세대 댓글부대'가 나온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국가 정보기관과 경제단체, 그리고 기타 작전세력은 인터넷 여론이 진보적으로 쏠려 있다고 판단, 인터넷 여론조작 업체를 통해 진보적인 사이트에 대해 파괴공작을 벌이는 내용이다.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위는 이 작품에 대해 치밀한 취재가 바탕이 된 현장감을 높이 평가했고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폭력을 드러내 궁극적으로 평화를 소망하게 한다고 호평했다.

내년 초에는 한국문화예술위 문학 사이트인 문장웹진에 연재한 SF 소설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가제)가 출판된다. 이어 예스24에 연재한 좀비물 '눈덕서니가 온다'와 에세이가 나올 예정이다.

장 작가가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은 2개다. 하나는 남북관계를 다루는 스릴러물. 하나는 문학공모전 제도를 다룬 논픽션이다.

작가는 지금도 자신이 저널리스트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이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공모전 제도가 어떻게 대부분 사람에게 좌절을 주는 제도로 바뀌게 됐는지 취재하고 있다.

그는 "문학공모전 제도를 통해 왜 한국사회가 간판에 집착하고 서열을 만들게 됐는지 들여다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자는 월급쟁이고, 소설가는 자영업자다. 월급쟁이에서 자영업자로의 변신, 만만치 않은 선택이다. 본인은 인생의 중반에 벌인 '도박'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사표를 내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것은 경제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걷어찬 후에야 그게 크리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지금 행복합니다. 하지만 행복이 금전적 안정성에서 나온 건 아니에요. 나와 보니 불안정한 것도 아니고, 돌아보니 과거에 안정적이었던 것도 아니에요. 제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얼마나 벌지 모릅니다. 그런데 20년 뒤에는 기자만큼 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회사에 더 있었어도 그 회사가 월급을 이십년, 삼십년 더 못 줬을 거예요. 언젠가는 나와서 치킨집을 차려야 하나 홍보업계 가야 하나 갈등 할 날이 왔을 텐데, 치킨집 차려서 성공할 확률이 문화공모전 응모해서 당선될 확률보다 높다는 생각이 잘 안 드네요."

그는 아직 변신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어 보였다.

그는 "제가 경력에 큰 변화를 준 사람으로 화제가 됐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죽기 전에 커리어를 최소한 한 번 아니면 두세 번 바꿔야 할 텐데 저는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를 꿈꾸며 신춘문예에 투고하던 대학생은 건설사, 언론사를 거쳐 끝내 자신의 꿈으로 돌아왔다.

그는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현재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 소설가로 오래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계속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 돌아가는 공부도 하겠다고 한다. 욕심이 많은 작가다.

"제 관심은 개인의 내면이기보다는 세상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한국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랜 관심사였던 북한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언론사, 기자, 정치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도 해볼 겁니다. 고귀한 욕심이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몰락하는 장엄한 드라마를 쓰고 싶습니다."

withwi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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